[책&생각] 우주를 그려내려는 인간의 꿈, 우주만큼 놀라웠네
놀라운 현대성과 예술성 지닌 작품 가득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영감 준 나선은하 그림도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
마이클 벤슨 지음, 지웅배 옮김
롤러코스터 l 4만3000원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추정할 수 있는 은하의 총개수는 1600억개가량에 이르고, 각 은하는 대략 1000만에서 100조개의 별(항성)을 품고 있다. 이 별들에는 모두 하나 이상의 행성이 공전하고 있다.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에만도 생명체가 거주할 가능성이 있는 지구형 행성이 400억개 남짓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나사(NASA, 미 항공우주국)의 케플러 우주망원경 데이터에 근거한 계산이다. 이런 아찔한 숫자들을 대하노라면 18세기 영국 천문학자 토머스 라이트가 내뱉었던 탄식에 절로 공감하게 된다. “대체 어떤 불가사의한 광대함과 위대한 힘이 이러한 구조물을 펼쳐내는가!”
라이트는 우주가 여러 개의 은하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최초로 표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가 21세기 과학 수준의 정확도로 우주를 파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는 물론 그보다 더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우주에 관한 사유를 펼쳤으며 그 결과를 문자와 그림, 조각 등으로 남겼다. 미국의 작가이자 예술가, 전시 기획자인 마이클 벤슨의 책 ‘코스미그래픽’은 양피지 그림에서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 그래픽까지 시각 이미지 300여점을 통해 우주에 관한 인류 사유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지은이 자신은 이 책이 “온전히 주관적인 조사의 결과”라며 겸손을 표하지만, 여기 수집된 다채로운 이미지들은 우주의 수수께끼만큼이나 인간의 지성과 상상력 역시 놀랍고 감탄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책은 천지창조에서 시작해 지구, 달, 태양, 행성과 위성, 일식과 월식, 혜성과 유성, 오로라와 대기 현상 등 10개 장으로 이루어졌다. 첫 장 천지창조의 첫 그림이자 책 전체의 문을 여는 작품부터가 충격적이다. 영국의 의사이자 우주론자였던 로버트 플러드의 저서 ‘거시 우주와 미시 우주, 두 세계에 관한 형이상학적·물리학적·기술적 역사’(1617)에 담긴 이 그림은 흰 바탕에 검은 펜으로 가로세로 줄을 무수히 그은 듯한 모습으로 20세기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유명한 그림 ‘검은 사각형’을 떠올리게 한다. 태초에 빛이 생기기 전 까만 공허를 표현한 이 그림의 네 면에는 “이제 무한을 향해 가자”라는 라틴어 문장이 적혀 있다. 플러드 자신의 책은 물론 이 책 ‘코스미그래픽’의 출발 선언으로도 맞춤한 셈이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 자체가 예술 작품이기도 하지만, 플러드와 말레비치의 사례와 비슷하게 현대미술을 연상시키는 다른 그림들도 있다. 1845년 영국-아일랜드계 천문학자인 제3대 로스 백작 윌리엄 파슨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컸던 지름 180㎝짜리 거대 망원경을 자신의 저택에 설치해 나선 형태 성운을 관측한 결과를 드로잉으로 남겼다. 그 드로잉을 바탕으로 제작한 나선은하의 소용돌이 모양은 유럽 전역에 복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유럽우주국의 플랑크 우주망원경 관측 결과를 담은 우주배경복사 그림은 잭슨 폴록의 추상미술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1898~1904년 덴마크 화가 하랄 몰트케가 네 번의 북극 탐험에 참가해 남긴 북극광(오로라) 그림은 북극광에 관한 과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흔히 중세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2세기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았고, 중세에 제작된 많은 서적들에서 지구는 둥근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12세기 천재 과학자 겸 예술가 힐데가르트 폰 빙엔 수녀의 책에 실린 그림에서는 사람들이 둥근 지구 위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수직으로 선 형태로 나온다. 그렇지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중세 교회의 양보할 수 없는 믿음이었고, 그것은 갈릴레오의 수난과 조르다노 브루노의 화형으로 이어졌다. 갈릴레오보다 18년 먼저 태어난 덴마크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는 지구를 제외한 다른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태양은 다른 행성들을 이끌고 지구 주변을 돈다는, 천동설과 지동설을 절충한 듯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동설을 주창한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난 지 불과 5년 뒤인 1478년에 나온 책(크리스티아누스 프롤리아누스의 ‘천문학’)에 실린 그림에서는 태양이 지구나 금성, 화성 같은 행성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게 빛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당시는 아직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이었는데도 수성과 금성, 화성 같은 행성들이 점이 아닌 원반 모양으로 묘사되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프랑스 천문학자 에티엔 트루블로는 1872~1880년에 하버드대 천문대에서 관측을 진행해 화성과 목성, 토성 등의 그림을 남겼다. 특히 토성 고리의 바퀴살 구조는 그로부터 무려 100년 뒤 쌍둥이 탐사선 보이저가 토성 곁을 지나가면서 그 존재를 입증하기 전까지는 소수의 천문학자들만 주장했던 것인데, 트루블로의 그림에는 그 모습이 놀랍도록 정확하게 담겨 있다.
혜성과 유성은 지구에 엄청난 양의 물을 제공했고 생명 탄생에 필요한 유기 분자들을 들여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혜성은 이렇듯 생명의 근원이 되었는가 하면 재앙과 종말의 조짐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공룡 멸종의 원인 역시 거대한 혜성이나 소행성의 충돌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16세기에 나온 책 ‘아우크스부르크 기적의 서’에는 30개가 넘는 혜성 그림이 나오는데, 대부분 역병이나 전쟁, 자연재해 같은 재앙을 암시하는 전조 현상으로 표현되었다.
전체적으로 유럽 쪽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조선의 별자리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포함된 것이 반갑다. 책 마지막에는 이스탄불의 코라 교회 천장에 그려진 14세기의 프레스코화가 실려 있다. 익명의 예술가가 그린 이 그림은 천사가 시간의 끝에서 하늘의 두루마리를 말아 올리는 모습을 담았다. 우주를 다룬 책의 마무리로 맞춤한 선택이라 하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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