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제대로 듣지 못함을 인정하니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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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의 진동으로 생긴 음파가 귀청을 울려 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명은 몸 밖에 이러한 음원이 없는데도 찌이잉, 삐이이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는 걸 말한다.
그는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며 "사실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듣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소리는 단순해지고, 세상은 완강해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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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이문영 지음 l 위즈덤하우스 l 1만7500원
물체의 진동으로 생긴 음파가 귀청을 울려 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명은 몸 밖에 이러한 음원이 없는데도 찌이잉, 삐이이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는 걸 말한다.
‘들음’이 중요한 직업인 기자 조이섶은 오른쪽 귀에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가 인터뷰했던 해고 노동자가 기사 보도 닷새째 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계기였다. 그 노동자가 일했던 공장 안팎에선 이미 29번의 죽음이 발생했고, 그가 30번째였다. “내가 기사를 쓰지 않았다면,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까.” 이후 이명은 조이섶의 동행이 됐다. 그의 세계는 이제 두 갈래로 나뉘었다. 소리가 들리는 왼쪽 귀의 세계와 이명이 들리는 오른쪽 귀의 세계로.
‘심각한 이명의 가장 흔한 원인은 중추신경계로 가는 신호 전달이 막혀 발생한다.’ 그는 의학적 설명을 시작으로 이명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소리를 듣는 데 문제가 생기면 듣지 못하는 소리만큼 뇌가 다른 소리를 만들어낸다’, ‘소리를 감지하는 부위로 충분한 소리가 전달되지 않을 때 뇌는 대체 경로를 통해 본래 소리와는 다른 소리를 인지한다’ 등.
조이섶이 입은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기자여서였을까. 이러한 개인적 고난을 사회에 접목해 “배제된 목소리가 이명이 된다”는 나름의 원리를 도출한다. “이 세계의 고막을 두드리는 신호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잡음이나 소음으로 치부할 때 그 소리들은 고립된 곳에서 혼자 울다 고칠 수 없는 질병”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소설에는 우리 사회에 깊은 슬픔을 남긴 실제 대형 사건들과 사건조차 되지 못한 사연 등 다양한 ‘이명의 현장들’이 등장한다. 기자 조이섶은 이 현장들에 가까이 다가가 이명이 된 목소리들의 입 구실을 위해 분투한다.
웅웅둥둥. 조이섶의 오른쪽 귀에는 소리에 소리가 추가되더니 마침내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가슴의 심장과 귓속 심장 박동이 불일치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조이섶의 심장이 아니라면, 누구? “(30번째 죽음의) 그 남자라고 나는 생각했다. 들리지 않던 소리들을 내 귀로 데려온 사람.” 조이섶은 갈수록 두통이 심해졌고, 오른쪽 청력도 잃고 있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뇌에서 두 덩어리 종양이 발견됐다. 그는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종양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며 “내 귀에 온 그 남자의 심장 소리가 나를 살린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오른쪽 청력을 잃은 기자 조이섶은 듣기에 자신이 없어지면서 듣고 나면 자신을 의심했다. 그는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며 “사실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듣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소리는 단순해지고, 세상은 완강해졌다”고 말한다.
조이섶의 상실된 감각을 기반 삼아 ‘들음’에 대한 묵직한 성찰을 길어올리는 이 소설은 “알아듣지 못하면 이명”이 될 뿐인 소리를 끈질기게 듣자고 권유하는 듯 이렇게 매듭짓는다.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할 테니 잘 들어요.” 서로의 삶을 상상하고,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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