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사망자 1.2%만 피해보상…인과성 입증 문턱 너무 높아

천호성 기자 2024. 1.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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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4년, 예방접종 피해자들 울분
코로나19 백신 접종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 3월 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던 김지용(29)씨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지 10시간 만에 사지가 마비돼 쓰러졌다. 진단명은 상세 불명의 뇌염·척수염·뇌척수염. 김씨와 가족은 백신 부작용을 책임지겠다고 한 정부 약속을 믿고 피해보상을 신청했다. 그러나 질병관리청 예방접종피해보상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는 ‘질환과 백신 접종 간 인과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보상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김씨에게 디스크 같은 질환이 이미 있었던 터라 백신 이외 다른 사유로 마비 증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였다. 병세가 더 악화되면서 질병청 전문위 심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의료비 3500만원만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 후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김씨는 일을 하지 못했다. 그의 가족은 수천만원의 병원비와 하루 10만원이 넘는 간병비로 결국 7천만원에 이르는 빚을 안게 됐다. 아버지 김두경(56)씨까지 아픈 아들을 돌보느라 휴직을 반복해왔다. 김씨 가족은 이런 피해가 백신 때문이 아니라는 정부 결정을 납득할 수가 없다. 결국, 지난해 1월 질병청 전문위 심의 결과에 한번 더 이의를 제기해 1년 가까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도 피해보상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런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내는 거 외엔 방법이 없다. 김두경씨는 “의료기관 종사자 모두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정부 방침을 따랐다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국내 코로나 첫 환자가 발생한 지 20일로 4년, 코로나 백신 접종(2021년 2월26일)이 시작된 지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백신을 맞은 뒤 건강을 잃은 김씨처럼 질병청 전문위 심의 결과에 수긍하지 못해 이의제기를 하거나 법정 투쟁에 나서는 이들이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질병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백신을 맞은 뒤 사망한 이의 유가족이나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 32명이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 거부처분 취소 소송 등을 제기했다.

정부는 백신 접종과 건강 피해(이상반응) 간 ① 인과성 명백 ② 인과성에 개연성 있거나 ③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피해보상’을 한다. 피해보상이 가능한 11가지 질환(혈소판 감소 혈전증, 심근염 등)을 정해두고 이로 인한 사망이나 중증장애는 4억8천만원, 경증 장애엔 사망 보상금의 55%를 지급한다. ④ 인과성 인정이 어려운 경우엔 보상금보다 적은 의료비나 사망 위로금을 주긴 한다. 이런 경우는 다시 ④-1 근거자료 불충분 ④-2 이상반응이 백신보단 다른 이유일 가능성 큰 경우로 나뉜다. 근거가 충분하진 않지만 ‘관련성 의심 질환’ 15가지로 인해 숨지는 경우 최대 1억원, 의료비 최대 5천만원이 지급된다.

명백하게 인과성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정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나, 이의제기와 법정 투쟁이 지속되는 건 백신과 건강 피해 간 인과관계를 인정받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문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수 소송에서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안나현 변호사(법무법인 하신)는 “사망자 유족들은 위로금 명목으로 돈을 받기보다 피해가 백신 접종에 의한 것이었다고 인정받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질병청에서 받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까지 코로나 백신을 맞은 뒤 숨진 까닭에 피해보상을 신청한 2천건 가운데 보상을 받은 경우는 23건(1.2%)에 그친다. 사망을 비롯한 전체 피해보상 신청은 9만7793건으로 그 중 2만4598건(25.2%)에 대해서 보상이 확정됐다.

그동안 정부는 피해보상을 확대하기보단 의료비나 위로금 지급 대상이나 금액을 늘려왔다. 2022년 3월 5종이었던 ‘관련성 의심 질환’은 현재 15종으로 늘었으나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인과성 인정 질환’은 9가지에서 11가지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질병청은 주로 의사를 중심으로 한 전문위에서 건강 피해가 ‘다른 이유보다 예방접종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동일하거나 높다’고 확인될 때만 인과성을 인정한다. 기저질환이나 노환 등이 있는 경우엔 보상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기존에 보고된 이상반응 사례가 드문 경우 역시 근거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보상 신청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의학적 인과성만으로 보상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때 백신 접종 증명을 요구하는 등 정책적으로 백신 접종을 강하게 독려한 만큼 보다 적극적으로 부작용을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백신 이상반응은 방역조처로 인한 사회·정책적 부작용이기도 하다”며 “질환과 백신 인과성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백신 이외에 질환이 생길 만한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 정부가 보상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시민이 아닌 정부가 코로나 백신과 건강 피해 간 인과성 입증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은 환자나 사망자 유족이 병원 진단·소견서와 부검 기록 등을 정부에 제출해 인과성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개인이 백신으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고 (사비를 들여) 소송을 통해 구제받는 지금 방식으로는 국가 예방접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것”이라며 “코로나 백신 피해보상 특별법을 제정해 질병청에 전담 조직을 두고 인과성 입증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의원 역시 “당국이 백신 피해보상에 더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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