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산부인과 의사도 임신·출산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양선아 기자 2024. 1. 19. 05: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저자인데 제목은 '출산의 배신'이다.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글을 쓴다면, 신비로운 아이 탄생의 과정과 숭고한 모성의 힘 또는 산후조리나 신생아 돌봄에 관한 이야기를 장광설로 늘어놓을 법도 한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배신감만큼이나 이 책은 생명의 신비로움을 일깨우고,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 임신·출산·육아라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관계성'이라는 특성을 형성한다는 사실도 주지시킨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억울함 호소 듣던 의사
임신·출산·육아 직접 경험 담아
예측 불가, 통제 불능이 원인
포장·폄훼 없이 입체적인 시각
여성의 몸은 임신·출산의 과정을 거치며 신체적·정신적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과학기술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임신·출산 등에선 예측불가능한 일이 많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여성은 고충을 느낄 수밖에 없다. 클립아트

출산의 배신
신화와 비극을 넘어서
오지의 지음, 박한선 감수 l 에이도스 l 1만7000원

산부인과 의사가 저자인데 제목은 ‘출산의 배신’이다.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글을 쓴다면, 신비로운 아이 탄생의 과정과 숭고한 모성의 힘 또는 산후조리나 신생아 돌봄에 관한 이야기를 장광설로 늘어놓을 법도 한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저자 오지의는 의학적 지식을 갖췄고 매일 진료실에서 “왜 애 낳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아무도 말을 안 해줬을까요?”라고 묻는 환자들을 만나던 의사다. 임신·출산·육아라는 ‘재생산’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기 전, 저자는 환자들이 호소하는 억울함과 배신감의 원인이 ‘정보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의학적 지식과 각종 경험이 풍부한 자신은 ‘재생산’ 과정에서 당황하지도 않고, 억울함이나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갔고, 저자는 자신이 느낀 ‘배신감’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경험과 의학적 지식을 잘 버무려 이 책에 오롯이 담았다. 산부인과 의사조차도 직접 경험해보고서야 임산부와 양육자의 고충을 온전히 이해했다는 얘기다.

임산부들이 억울함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신체의 급격한 변화다. 임신하게 되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피로와 졸음을 쉽게 느낀다. 임신 후반기로 갈수록 숨이 차고 거동도 힘들다. 자궁의 용량이 최대 1000배까지 늘고, 여성의 몸은 태아를 기준으로 모든 것이 재조정된다. 이 과정에서 변비, 소화, 소변 문제는 기본이고 관절 통증 등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거기에 입덧까지 생긴다면 임신부의 마음 한구석엔 억울함이 똬리를 틀 수밖에 없다.

출산 뒤 과정은 또 어떤가. 출산 뒤 여성은 체형도 변하고 탈모 증상에 착색된 피부 등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모유 수유를 할 경우 밤잠을 설치는 것은 기본이고 아이의 배꼽시계에 맞춰 항상 대기조처럼 살아야 한다. “수유 기계가 된 것 같아요”라 말하는 산모들의 육성은 아이만 있고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위협감을 드러내 준다.

임신과 출산은 이처럼 여성의 신체와 정서에 큰 변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이 일련의 과정은 예측불가능함투성이다.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현대인에게 이런 예측불가능함은 힘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산부인과 진료는 생식기를 진찰받아야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출산 과정에서 내진, 제모, 관장이라는 과정은 임산부에게 불편하고 부정적인 경험으로 기억된다. 게다가 이 사회는 완벽한 어머니다움을 상정해놓고 여성에게 얼마나 많은 압박을 가하는가. 억울함과 배신감의 원천이다.

임신·출산·육아를 경험한 당사자이면서 전문가인 의사가 과학적인 사실을 토대로 ‘배신감’의 정체를 밝혀주니 속이 시원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임신·출산·육아에 부정적인 생각만을 줄 것이라고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배신감만큼이나 이 책은 생명의 신비로움을 일깨우고,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 임신·출산·육아라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관계성’이라는 특성을 형성한다는 사실도 주지시킨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배란과 수정, 착상이라는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엄마 뱃속에서 10개월 자라 온 힘을 다해 산도를 통과한 한 아이였던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모성을 거룩하고 위대한 것으로 포장하면서 여성에게 지나친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고 임신·출산·육아의 힘듦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이 책은 많은 여성에게 공감받은 느낌을 줄 것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