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사막 행성에도 예쁜 동화는 ‘당근’ 피어나고

한겨레 2024. 1. 1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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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

파티 소식을 알리기 위해 초대장을 들고 누군가의 집에 찾아가고, 파티 때 준비하는 메뉴를 알리기 위해 또다시 그 집을 방문하고, 날씨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파티 참가자들이 호스트의 집에서 몇 밤씩 자고 가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만나기는커녕 음성조차 섞지 않고 기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그 시대 사람들은 몇 번씩 얼굴을 보고 함께 숙식을 하며 해결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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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정진영 지음 l 무블출판사(2024)

‘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 파티 소식을 알리기 위해 초대장을 들고 누군가의 집에 찾아가고, 파티 때 준비하는 메뉴를 알리기 위해 또다시 그 집을 방문하고, 날씨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파티 참가자들이 호스트의 집에서 몇 밤씩 자고 가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만나기는커녕 음성조차 섞지 않고 기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그 시대 사람들은 몇 번씩 얼굴을 보고 함께 숙식을 하며 해결했다.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내린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중 어떤 것도 동원하지 않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반드시 누군가와 직접 만나야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의식주의 수단들이, 이제는 타인과의 만남 없이 간단히 획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현대사회에서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연결자’ 역할을 해내는 이들이다. 이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먹고, 걷고, 대화하게 만드는 이들이 공동체 내에서 막대한 발언권과 결정권을 얻는다.

18세기 영국 소설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도 각각 따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지금 여기의 모습이 새삼 서글프게 느껴진다. 인간이 가까이 있는 ‘진짜’ 인간에게서 떨어져 나가 핸드폰 속 머나먼 누군가에게 몰두하게 만든 것은 통신기술의 발전 때문일까, 자본주의 때문일까. 아마도 양쪽 다일 것이다.

‘당근 마켓’은 통신기술과 자본주의가 낳은 최신식 물품 거래 수단이다. 하지만 ‘당근’은 백 퍼센트 비대면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래 과정 대부분이 핸드폰 화면을 통해 진행되지만 가장 마지막 과정, 즉 물건을 주고받는 행위는 대면으로 이루어진다. 물건 상태를 직접 확인해야 하기에 판매자와 구매자 간 만남이 필수로 동반되는 것이다.

소설집 수록 단편 ‘징검다리’는 ‘당근’ 거래에 포함된 이 과정,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마지막 단계에 초점을 맞추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소설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은 기계와 다르다. 처음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마음으로 거래에 임하지만, 특정 순간엔 흔들리고 비이성적이 된다. 감정에 휩싸이고, 생전 처음 보는 상대의 마음에 이입한다. 심지어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누군가에게 고가의 물건을 선물하기도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시대와 인간의 조우를 조명하는 작가의 영리한 방식에 빙그레 웃음 짓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이었고, 어떤 시대에 놓여 있든 인간은 다른 인간 앞에서 한순간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 ‘당근’ 거래에서 소설 속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통신기술과 경제구조가 인간을 예전과 완전히 다른 지형에 데려다 놓았지만, 인간은 이 전대미문의 환경에서도 여전히 다른 인간을 향해 손짓하고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현대판 동화라 해야 하리라. 기계와 첨단기술과 세련된 경제 시스템의 한가운데에서 예쁘게 피어난 판타지라고 명명해야 하리라.

정아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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