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나의 종교는 반항”이라, 국가가 버렸던 이슬람 작가
기성세대·국가의 위선·원리주의
원색적 비판…24년 국외 떠돌아
출간 70돌…고전의 현재성 증명
단순한 과거
드리스 슈라이비 지음, 정지용 옮김 l 을유문화사 l 1만8000원
“우리는 모두 종이다. 그들은 13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이슬람교의 종이고, 나는 이슬람교의 결정체인 군주의 종이다.”
모로코 청년 ‘나’의 고백이다. ‘군주’로 불리는 이의 말도 하나 들어보자.
“유대인에게 인사한 자는 손을 잘라야 하며,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쳐다본 아내는 눈을 파내야 한다.”
이런 구문을 품은 책의 존재만큼 눈길을 사로잡은 건 이런 말을 토해내는 지은이의 존재다. 고전 반열에 선 장편소설 ‘단순한 과거’와 이를 첫 작품으로 프랑스에 내놓았던 모로코 작가 드리스 슈라이비(1926~2007). 작품도 작가도 국내에 소개된 바 없다. 81살 나이로 눈을 감았을 때,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모로코 문학을 현대화한 이”로 그를 애도했다.
여전히 서구 매체는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문화, 관광 등에 있어 모로코를 소개할 때 슈라이비를 거명한다. 모로코계 미국 작가 라일라 라라미(56)의 말마따나 “믿을 만한 모로코인 캐릭터를 처음 창조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가는 혹독했다. 작가는 첫 작품과 함께 즉각 ‘모로코를 배신한 자’가 되어야 했다. 펜 끝이 점령국 프랑스 대신 조국을 향한 탓이다. 모로코는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으나 이어 곧 시작된 슈라이비의 ‘유배 생활’은 그가 예순 다 된 1985년에야 끝난다.
출간 70돌을 맞은 이 소설이 이제 막 출간된 것이라면 슈라이비의 운명은 달랐을까. 각각의 판단이 지금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자, 고전의 현재성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다.
‘단순한 과거’는 작가의 삶이 투사된 19살 청년 드리스를 주인공으로 한다. 작가의 이름, 고향, 환경이 겹치고, 아버지, 형제가 또 겹친다. 무엇보다 일치하는 건 작가의 절망과 분노, 날것 그대로의 반역자 욕망이다. 스스로를 “과인”이라 칭하는 페스 출신 아버지(58살 파트미 페르디)는 가족의 율법이요, 일상의 관습이자 공기다. 군주요, 주인. 예언자의 후예로, 거부 사업가이며 핫지(메카 순례자에게 붙이는 경칭)이기도 하다. 인격과 카리스마, 권력이 하나 된 자다.
하지만 가정, 학교에서 억압과 폭력 아래 자란 첫째 카멜은 술에 빠지고, 둘째 드리스에게 “나의 종교는 반항”이 된다. 40년간 일곱 자녀를 낳으며 “자신을 망각하고, 또 망각하는 행위마저도 망각”한 채 살아온 어머니는 복종 아니면 기도다. “그분(이슬람 성자)들은 제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군주와 주인을 위해 헌신할 뿐입니다. 그러니 그리스인과 러시아인의 성자들이시여, 작은 사고든, 계단에서 떨어지든, 세균이든, 독일군의 폭탄이든, 저는 죽고 싶습니다….”
외견상 풍족하고 견실한 가정은 아버지 사업의 위기, 아버지 구타로 인한 막내 하미드의 죽음, 드리스의 프랑스 대학시험 합격, 어머니의 자살 사건을 거치며 이슬람, 가부장 전통의 폭력성을 까발리고 체계를 흔드는 진앙지가 된다.
이때 집요하게 드리스가 힐난하는 것이 ‘아버지들’의 위선이다. 위선의 서식지는 교조주의, 원리주의다.
“(굶주림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모든 장소와 모든 상황에서 같은 성격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라마단 금식 때 내내 포악해졌다 저녁 담배나 피워야 온순해지거나 대마초를 기도용 카펫에 숨겨두는 행태, 매해 재산의 2.5%를 빈자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교리의 틈을 악용, 유동자산을 과세 불능의 부동자산으로 돌려 자선액을 줄이되 단기간 더 큰 지주가 되는 행태, 부자들의 여행할 핑계에 불과한 메카 순례…. 드리스는 아예 이를 바칼로레아 논술 시험에서 논거로 쓴다.
가족을 국가의 단위로 삼는 집단에게, 가족 서사야말로 어린 여자를 성노예화하고 축재에 여념 없는 이슬람의 기득권, 종교지도자, 나아가 국가의 권위주의와 폭력을 싸잡는 가장 촘촘한 그물일 것이다.
작중 드리스는 이를 고발하기 위해 ‘광대’를 자처한다. 기억과 상상, 직설과 은유를 오가며, 부모, 형제, 행인들, 심지어 독자를 향해 자신의 ‘말’을 쏟아붓는다. 언어에 의한 반란이므로 거침없되 허무하고 무모해지더라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각오한 채, 비로소 ‘모코로인의 캐릭터’를 드러내 보이려는, 언어밖에 가진 게 없는 작가로서의 안간힘이 바로 ‘단순한 과거’다.
“나는 다시 군주의 집 쪽으로 걸었다. 모든 것이 내가 돌아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내 환상은 비누 거품처럼 꺼졌고, 결실을 보지 못한 나의 반항은 오래된 똥 덩어리 같았다.”
소설에서 ‘아버지’는 끝내 ‘패배’하지 않는다. 사업을 재기시키고 “과인”이라는 칭호를 버린 채 말하자면 ‘부드러운 권위주의’로 드리스(새 세대)를 포용 지배하려 든다. 그렇단들 드리스도 패배한 건 아니다. ‘아버지’가 인격과 카리스마, 권력에 더불어 위선이 하나 된 자라는 사실을 표명하고, 기성세대의 미래는 더 위태로울 가능성을 예고하며 마무리 짓는다.
이 맥락에서, 아버지가 말미 드리스에게 충고하는 대목이 또한 상징적이다. “네가 거짓말한다면, 거짓말하는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일 것이다. 너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지. 너 자신을 속이려면, 네가 보기에 너 자신이 별 가치가 없어야 한다.” 아버지의 위선은 결국 아버지의 무가치로 가능하단 얘기. 이슬람 미래 세대의 ‘살부’가 왜 정당한지를 실토한달까.
학계에선 ‘숫염소들’(1955), ‘열린 계승’(1962)으로 슈라이비의 ‘반항 3부작’이 완성되었다고 본다. 번역한 정지용 성균관대 교수(프랑스어문학)는 “서양의 근대적 가치관에 근거해 이슬람 문명을 대표하는 아버지에게 반항했고, 프랑스에 정착한 다음에는 반대로 마그레브(프랑스 점령지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를 합한 말) 이주자들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서양 문명에 반항했고, 그다음 …이분법을 거부하고… 더 깊은 관점에서 유럽과 마그레브를 아우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러한 ‘변증법적 반항론’의 귀착지를 작가의 ‘순응’ 내지 ‘변절’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슈라이비는 조국의 입국금지 조처 해제와 함께 24년 만에 고향을 방문한다. 1970년대 “반항밖에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매섭게 몰아세웠던 국왕 하산2세의 초청 덕분이었다.
정지용 교수는 18일 한겨레에 “전통과 근대, 과거와 현재, 세대 간 대립 갈등 문제를 프랑스 (주류)문학에선 보기 어렵다”며 “그간 서양문학 수입에 치중해 프랑스 문학만, 단순한 수용자 모방자로서, 보아 왔는데, 그 안에서 우리 역사, 정서와 비슷한 (소수)문학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제 소개하게 된 것”이라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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