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종교와 물질만능주의를 넘어서는 행복의 길

한겨레 2024. 1. 1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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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밀러가 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앞부분에는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지은이가 일곱 살 때 생화학자인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밀러는 한때 자신을 매료시켰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우생학이 아버지가 말한 삶의 특징인 혼돈에 대한 한낱 해독제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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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근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IC348 성단의 가운데 영역. 천문학자들은 이 성단을 샅샅이 관측한 끝에 목성 질량의 3~4배에 불과한 갈색왜성을 발견했다. 사진 전체에 걸친 희미한 장막은 성단의 별에서 나오는 빛을 반사하는 성간 물질, 즉 반사 성운이다. 사진 중앙의 밝은 쌍성계 별은 성단에서 가장 큰 별이다.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제공

과학인생학교
이명현·장대익 지음 l 사이언스북스(2023)

룰루 밀러가 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앞부분에는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지은이가 일곱 살 때 생화학자인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한마디로 “의미는 없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냉철했다. 신도 내세도 운명도 없노라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적에 지은이는 이 세상을 덮고 있던 커다란 이불을 빼앗긴 느낌이었고, 차가운 느낌의 회오리가 폐부에서 일었다고 회고했다.

이 대목이 문득 떠오른 것은 이명현과 장대익이 이런 입장을 대놓고 ‘과학인생학교’에서 설파한 탓이다. 천문학자인 이명현은 장대한 우주 탄생의 역사를 흥미롭게 요약하면서 오래전 우주 어디에선가 만들어진 원소가 우리 몸을 이루는 성분이 되었다며, 우리는 별먼지일 뿐이라 정의한다. 진화철학자인 장대익은 46억 년에 걸쳐 성장한 생명의 거대한 나무를 설명하며 인류는 30만년 전에 우연히 나타나 “운 좋게 살아남았고 환경에 제법 잘 적응해 온 독특한 동물”에 불과하다며 자신을 생명나무의 잔가지라 일컬었다. 정말 한겨울에 이불 빼앗기고 폐부에 차가운 회오리가 부는 듯하다.

다행히 두 사람은 밀러의 아버지보다는 다정하다. 이명현은 “광활한 공간과 유구한 시간을 고려하면 작고 연약한 존재”인 우리가 지적 능력을 갖추어 우주의 근원을 궁리하는 존재로 성장했으니, 생각하는 별먼지라 추켜세웠고, 장대익은 “다른 동물과 차별화된 사회성과 학습능력”을 갖추고 지구에서 유일하게 문명을 이룩한 종이 되었으니 놀랍지 않냐며 위로해 준다. 그러면서 인간은 연약하지만 고고하고, 미미하지만 위대하다고 상찬한다.

두 과학자는 오늘의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종교와 물질만능주의라는 우상을 부숴 버린다. 초월자는 존재해서가 아니라 뇌의 화학작용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특히 마이클 셔머의 ‘믿음엔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뇌가 “감각기관을 통해 유입되는 감각 정보를 믿음으로 바꾸는 장치”를 말한다. 진화는 생존과 번식의 메커니즘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이 메커니즘을 제대로 활용한 체제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체제는 “인간의 초사회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폭주”하는지라 결정적 위기를 맞이할 것이란다. 그러면서 두 과학자는 단언한다. 이제 과학이 종교와 돈이 차지했던 자리를 대체해 진짜 위안을 줄 수 있노라고.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객관적이고 궁극에는 수학적 공식으로 만물의 이치를 풀어내는 과학이 어떻게 우리 삶을 위안해 줄 수 있을까. 장대익은 과학은 그 모든 것을 탐구하고, 여기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주어서라고 답한다. 이명현은 과학적 지식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삶과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게 해주는데, 그 덕에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나갈 수 있게 해주어서라고 말한다.

밀러는 한때 자신을 매료시켰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우생학이 아버지가 말한 삶의 특징인 혼돈에 대한 한낱 해독제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두 과학자는 종교와 자본주의가 그 역할을 한다고 본다. 분류학의 성체를 무너뜨린 분기학을 접한 밀러는 드디어 아버지에게 반박할 수 있는 삶의 가치관을 얻었노라고 선언한다. 과학적 세계관을 갖추면 우리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두 과학자의 말과 통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깊이 동의한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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