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를 일반고로?…“청년농 육성에 찬물 끼얹는 일”
총동문회, 추진위원회 구성
대학 진학 비율 근거로 주장
타지까지 부정적 영향 우려
“학과 개편…내실다지기 우선”

특성화고등학교인 제주고등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문제가 최근 공론화되면서 지역 농업계를 중심으로 반대와 우려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논란은 지난해 6월 제주도교육청(교육감 김광수)이 ‘신제주권 중학교와 고등학교 신설 등 타당성 연구용역’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학교 신설보다 고교체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오자 한쪽에서 인구 과밀지역인 신제주권에 학교 용지를 새로 마련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기존 제주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게 낫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제주고 졸업생들이 전문분야로 진출하기보다는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은 점도 일반고 전환의 근거로 내세웠다.
제주고를 일반고로 전환하자는 의견은 이전에도 종종 제기됐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제주고 총동문회가 일반고 전환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데다, 최근엔 토론회까지 열리자 농업계를 중심으로 반발과 우려가 터져 나온 것이다.
농업계에서는 섣부른 일반고 전환은 자칫 학교 존립을 위기에 빠뜨릴 뿐이며, 특히 정부와 농협·농업계가 한뜻으로 매진하고 있는 청년농 육성사업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반발한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4월 ‘2023∼2027년 농업·농촌 및 식품전략 발전계획’을 통해 2027년까지 청년농 3만명을 육성키로 하고 올해 관련 예산 1조2000억원을 편성하는 등 청년농 육성을 주요 추진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농협도 각종 자금 지원과 맞춤 교육으로 청년농 유입과 육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제주고 75회 졸업생인 김현우 전 NH농협 서귀포시지부장은 “지금의 인구변화 추세라면 몇년 내에 기존 일반고마저 통폐합을 논의할 게 자명한데, 여기에 후발주자로 나서는 것은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라며 “차라리 스마트농업·동물곤충·농업경영 등 시대 흐름을 반영한 학과 개편으로 내실을 다지고 청년농 육성에 힘을 더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재학생 대다수도 일반고 전환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자치회 임원으로 활동하는 2학년 한세린양은 “재학생 대상 자체 설문조사 결과 반대가 훨씬 많았다”며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하는 건 재학생의 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지역보다 농업 비중이 큰 제주가 특성화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면 상대적으로 농업 비중이 낮은 다른 지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크다.
2022년 통계청의 지역내총생산(GRDP)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제주지역 전체 GRDP 중 농림·임업·어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9.4%에 달했다. 이는 전국 평균(1.6%)보다 6배가량 높다.
게다가 1990년대까지 급감하던 농업고가 최근 들어 소폭 증가하는 등 농업 관련 교육기관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농업 인력 육성이 힘을 받고 있는데, 이번 일이 애써 조성한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교육부에 따르면 1950년대 140여개에 달했던 농업고는 1990년대 30여개로 줄었다가 이후 특성화고 등으로 개편되면서 농업계열 고교가 2013년 34개에서 2023년 40개로 늘었다.
고영찬 제주고산농협 조합장은 “1차산업이 핵심인 제주가 농업 전문가 육성에 힘을 싣진 못할지언정 오히려 거꾸로 가서는 안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제주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농업 비중이 낮은 다른 지역은 이보다 쉽게 청년농 육성 동력을 잃게 돼 결국 식량산업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문성인 도 교육청 미래학교추진단장은 “고교 체제 개편을 다방면으로 고민하는 중이나, 현재로선 확정된 바 없다”면서 “일반계 전환은 총동창회 차원 의견일 뿐이며, 이밖에 여러 목소리를 종합해 전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고는 1907년 제주의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1951년 제주농업고등학교, 2000년 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 등으로 여러번 교명을 변경했다가 2008년부터 현재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농업 관련 학과인 ‘관광그린자원과’를 비롯한 4개 과를 운영 중이다.
약 120년간 2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제주고는 그동안 시대 흐름에 따라 체제를 개편함으로써 전문 인력 양성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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