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사과값 보도, 통상압력 빌미 될 수도

김상영 기자 2024. 1.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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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한·미 쇠고기 협상을 통해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허용되자 성난 민심은 연일 촛불집회를 열고 정권 퇴진을 외쳤다.

당시 보고서는 "현재 미국산 사과의 한국 시장접근(수출)이 전면 금지돼 있다"며 "미국은 한국이 사과를 수입하도록 계속해서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질랜드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앞선 1991년 수입위험분석을 우리 측에 요구했고, 뉴질랜드에서 들여와 국내에서 재배하는 '엔비' 사과는 이미 한국 소비자 공략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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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한·미 쇠고기 협상을 통해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허용되자 성난 민심은 연일 촛불집회를 열고 정권 퇴진을 외쳤다. 위기감을 느낀 이명박정부는 그해 6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으로 보내 재협상에 나섰지만, 미국은 ‘과학적 근거’를 운운하면서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김 본부장은 촛불집회 중 규모가 가장 컸던 광화문 시위 사진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 사진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것 같냐”며 미국을 설득, ‘(임시적인 조치로) 30개월령 미만 쇠고기만 수입한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김 본부장은 “미국 협상단에 한국인들의 감정을 알리는 데 사진이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통상협상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상대국 의중과 약점을 빠르게 파악한 뒤 주고받기식 거래를 통해 시장을 뺏고 빼앗기는 경제전쟁이다. 이런 불꽃 튀는 심리싸움에서 상대국의 패를 볼 수 있다면 승기를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사과 가격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자 정부가 사과 수입을 추진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정부는 부인하고 나섰지만, 파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은 한술 더 떠 정부가 사과 수입을 막고 있다는 비판 기사까지 내보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과실파리 같은 병해충을 이유로 신선·냉장 사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수출국 입장에서 한국 사과시장은 연간 소비량이 50만t, 생산액으로는 1조3770억원(2021년 기준)에 이르는 블루오션인 셈이다.

우리 사과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나라는 11개국이다. 이들은 자국 영토 내에서 사과 관련 위험 병해충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수입위험분석(IRA)을 우리 측에 요구한 상태다. 최근 국내 언론 보도에 쌍수를 들고 반길 나라로는 미국과 뉴질랜드가 꼽힌다. 8단계로 이뤄진 수입위험분석 중 대다수가 1단계(접수)에 머물러 있는 반면 두나라는 3단계(예비위험평가)로 두발짝 더 나아가 있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매년 발간하는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보면 2018년부터 사과가 본격 등장한다. 당시 보고서는 “현재 미국산 사과의 한국 시장접근(수출)이 전면 금지돼 있다”며 “미국은 한국이 사과를 수입하도록 계속해서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사과시장을 열라는 선전포고였다. 이후 미국은 매년 두차례 열리는 ‘한·미 식물검역 전문가회의’에서 사과를 빠뜨리지 않는다. 가장 최근인 2023년 11월 회의 안건에서도 사과는 ‘지속적 논의’ 품목으로 테이블에 올랐다.

세계 5위 사과 수출국인 뉴질랜드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뉴질랜드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앞선 1991년 수입위험분석을 우리 측에 요구했고, 뉴질랜드에서 들여와 국내에서 재배하는 ‘엔비’ 사과는 이미 한국 소비자 공략에 성공했다.

사과시장이 활짝 열리면 국내 농업에 미치는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산 사과 관세 45%는 단계적으로 내려가다 2021년 철폐됐고, ‘후지’ 계통만 일부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신선·냉장 사과 수입이 허용됐을 때 연간 국내 생산 감소액이 ▲사과 4080억원 ▲배·포도 등 대체 과일류 1270억원 ▲과채류 490억원 ▲기타 140억원 등 모두 5980억원에 이른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도 있다.

사과는 과일계의 쌀과 같은 핵심 품목이다. 최근의 언론 보도는 외국산 사과가 한국시장에 진출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사과 수출국들이 협상 테이블에 우리 언론 보도 스크랩을 들고나올까 걱정스럽다.

김상영 뉴스콘텐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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