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병원 옆 '항암 요양병원' 성업... 수도권 의료 쏠림 악순환
지방 환자들 항암 원정 쉼터 된 요양병원
비급여 치료 위주... 일주일 최대 400만원
빅5가 요양병원과 협약 맺고 입원 안내도
"결국 지역의료 질 저하로 이어질 것"
"방사선 (치료) 하면 사람이 집에 못 있어요, 힘들어서. 그런데 (암)병원은 입원 환자를 받아주는 데가 없으니까 결국 요양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한경식(가명·69)씨는 최근 아내가 서울의 '빅5 병원'(국내 5대 상급종합병원) 중 한 곳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통원하는 동안, 아내를 수도권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치매도 아니고 임종을 앞둔 상태도 아닌데 웬 요양병원인가 하겠지만, 한씨 아내가 입원한 곳은 일반 요양병원과 다른 자칭 '항암 전문' 요양병원이었다.
노인 말고 암환자 케어합니다... 항암 전문 요양·한방병원
항암치료를 하면 구토, 설사, 어지럼증은 물론 골다공증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항암 요양병원은 이런 암환자를 위한 일종의 '조리원'이다. 환자가 음식을 먹지 못하면 수액을 놔주고 통증이 심하면 진통제를 처방한다. 의사가 부작용 상담을 해주고, 항암 치료 스케줄에 맞춰 암병원 이송·픽업 서비스도 제공한다. 응급상황이 생기면 바로 구급차에 태워 수술한 병원으로 보낸다.
1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특히 빅5 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삼성서울 서울성모 서울아산) 인근에 이 같은 항암 전문 요양병원·한방병원이 성업하고 있다. 서울에서 최근 10년간(2013~2023) 요양·한방병원이 1.54배 증가하는 동안 빅5 병원이 위치한 자치구(강남 서초 송파 종로)에선 1.89배 늘었는데, 항암 요양병원 신설이 이런 차이에 일조했다는 것이 의료계 중론이다.
이들 의료기관은 암환자가 많이 찾는 빅5에서 수술 후 항암·방사선 치료를 통원치료로만 진행한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환자가 항암치료 부작용을 호소해도 병원에 입원할 수 없다 보니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요양병원이 솔깃한 선택지가 되는 것이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에겐 더욱 그렇다. 후유증, 부작용 등으로 당일치기 항암치료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숙박업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긴 불안하다.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실제로 본보가 항암 요양병원에 전화로 입원 문의를 해보니 "지방 어디 사시냐, 서울엔 언제 올라오시냐" 같은 질문을 우선적으로 하는 곳이 있었다.
비급여 치료로 수익... 입원료 주 400만원 넘기도
빅5 병원 중 일부는 요양병원들과 진료 협약을 맺고 입원을 안내하기도 한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급성기 치료 이후 환자의 상태 유지나 체력 향상까지 우리가 맡아 입원 치료를 하기는 힘들다"며 "입원을 원하시는 경우 이런 병원이 있다고 안내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항암 요양병원의 주 수익원은 비급여 치료다. 수액은 물론 항암제 종류에 맞춰 면역치료, 온열치료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비급여 치료를 받지 않으면 입원이 불가능하고, 최소 입원 기간이 일주일로 정해진 곳이 많다. 한 요양병원은 본보 문의에 "운영 사정상 비급여 치료 비용이 높고, 단순 요양 입원은 불가하다"고 안내했다.
입원료 부담도 적지 않다. 본보가 빅5 인근 요양병원 10곳에 문의한 결과, 일주일 입원비가 4인실은 평균 147만 원, 1인실은 286만 원이었다. 1인실 입원 비용이 가장 비싼 곳은 415만 원이었다. 모두 비급여 치료 비용을 포함한 금액이다.
다만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치료비 청구가 가능하고, 항암 요양병원도 이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 본보가 연락한 대부분의 병원은 "'실비'(실손의료보험을 일컫는 말)가 있으면 80% 정도는 (치료비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가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씨도 이런 일을 겪었는데, 지난해 보험사에 소송을 걸어 6,000만 원가량을 돌려받았다.
환자 수도권 집중 부추겨 지역의료 질 저하
암환자들은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심각한데도 입원할 곳이 없다고 호소한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위원회 회장은 "항암치료를 하면 모든 기력이 저하되고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난다"며 "환자들은 힘들다고 하는데 받아주는 곳은 요양병원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성토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지역 간 의료 격차, 이로 인해 수도권 대형병원에 환자가 집중되는 현상을 보다 근본적인 항암 요양병원 성업 요인으로 꼽는다. 실제로 비수도권에 살면서 빅5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환자 수는 2013년 50만425명에서 2022년 71만3,284명으로 10년 새 43%가량 급증했다. 암환자 역시 2018년 19만1,711명에서 2022년 22만4,480명으로 17%가량 늘었다.
수도권 대형병원 주변에 항암 요양병원과 같은 보조 기관까지 들어서 '진료 생태계'가 공고화할 경우 가뜩이나 기반이 취약한 지역의료는 고사 상태로 내몰릴 거란 우려가 나온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환자들의 수도권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 결국 지방의료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환자 수가 줄어들면 치료할 의사도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도 "수도권 쏠림 현상이 해결되지 않는 한 빅5와 공생하는 요양병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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