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박재욱 신라대 행정학과 교수 2024. 1.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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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중종 등 권력자, 정치적 고비 때 아내와 결별
‘김건희 특검법’ 여론도 높아…의혹 밝히는 건 대통령 책무
박재욱 신라대 행정학과 교수

얼마 전 영화 ‘나폴레옹’을 보며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 제위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하자 그가 사랑하는 조제핀 황후와 이혼하는 장면이었다. 1810년 1월의 일이다. 정통성 약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이었으리라. 그래도 조제핀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게 권력 세계의 비정한 속성이다. 영화 대사 중에 “조제핀 없는 나폴레옹은 아무 것도 아니다”로 조제핀에 대한 나폴레옹의 사랑을 요약한다. 인간 나폴레옹을 향한 조롱인가, 위로인가. 허나 조제핀과의 이혼으로 나폴레옹도 프랑스도 위대해졌다.

그보다 300년 앞서 조선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중종은 연산군의 폭정에 맞선 반정으로 마른하늘에서 날벼락 치듯 왕위에 오른 임금이다. 그에게는 진성대군 시절 혼인한 찰떡궁합 단경왕후 신 씨가 있었다. 금실이 엄청 좋았고 현명함까지 갖추었다 전한다. 그러나 왕후의 아버지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이자 좌의정이었고, 고모가 연산군의 왕비였으니 당대 최고의 권력가 집안은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를 면할 수 없었다. 그러니 반정 훈구대신들이 단경왕후를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1506년 반정 직후 7일을 버티다 반정세력의 거듭된 압박에 중종은 결국 단경왕후를 서인으로 강등하고 궁궐 밖으로 내보낸다. 허수아비 왕의 비애이다. 허나 단경왕후를 내치니 중종도 종묘사직도 이어졌다.

권력의 세계는 어떤 고비에서는 조강지처라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그런 비정한 결단이, 살아있는 권력자의 권위와 위세를 높이곤 한다. 황제와 황후, 왕과 왕후의 비애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곤 한다.

이번엔 영국 왕 에드워드 8세의 순애보 사연이다.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 왕의 이야기이다. 이미 재혼녀였던 미국인 윌리스 심슨 부인과 사랑에 빠진 영국 왕을 왕실은 물론 영연방 교회 의회 국민 모두가 거부하자 그는 과감히 사랑을 택한다.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퇴위를 간곡히 만류하지만, 그는 “무거운 책임을 맡는 일도, 왕으로서 원하는 바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일도,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래서 짐은 사랑을 택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퇴위한다.

비극적 죽음으로 아직도 여전히 많은 국민으로부터 아쉬움과 비통함을 느끼게 만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는 또 어떤가.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란 절규에 가까운 외침으로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인천시 경선 연설회장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내의 장인이 좌익 활동을 했다는 당시 이인제 후보의 ‘색깔론’ 공세를 맞받아치며, 장인의 좌익 활동 사실을 알고서도 결혼했고 잘 살고 있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하던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그였지만 퇴임 이후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미니홈피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평생 청렴하게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던 그의 인생 자체가 하루아침에 허물어졌다는 자괴심이 그를 비극적 죽음으로 몰아갔다.

아내와 직접 관련되지 않지만, 가족사와 관련된 대통령의 정치적 비극은 우리 현대 정치사에 줄곧 있어 왔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의 구속,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이명박 대통령 아들의 내곡동 사저 논란 등에 있어 전직 대통령들은 사랑하는 자식들을 사법의 심판대 위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이기 이전에 대통령이란 직분이 주는 무게감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요즘 이른바 ‘김건희여사 특검법’을 둘러싸고 여론의 열기가 뜨겁다. 이미 2022년 9월 10일 MBC 여론조사에서 김건희여사 특검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2.7%, 작년 3월 KBS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특검 찬성이 60%로 나타났다. 이러한 특검 찬성 여론은 작년 말 국회에서 특검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여전했다. 중앙일보-한국갤럽 조사(2023.12.28~29)에서 65%가, 조선일보-TV조선-케이스탯리서치(2023.12.30~31) 및 경향신문-엠브레인퍼블릭(2023.12.29~30)조사에서도 각각 63%와 62%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대했다.


실제 대통령의 특검 거부권이 행사된 이후인 지난 8~10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김 여사 특검법 거부권 행사가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은 23%에 그친 반면, ‘잘못한 결정’이라는 응답은 65%로 세 배 가까이 많았다. 사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의 위법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니 국민이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도록 의혹을 명명백백 밝혀 해명하는 건 국정 최고 책임자의 당연한 정치적 책무다. 그만큼 왕관의 무게는 무겁고 대통령의 직분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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