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부산의 성정(性情)은 무엇일까?

윤정현 가톨릭부산교구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원장 2024. 1.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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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가톨릭부산교구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원장

부산은 한 마디로 그 정체성을 규정하기에는 매우 복합적이고도 입체적인 도시다. 열강에 의한 침탈과 동족 간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아픈 역사의 나이테가 아직 도시 곳곳에 내재해 있다.

우선 부산은 ‘열림’의 도시이다. 1407년 부산포를 개항하여 왜관이 설치된 이후 열강에 의해 1876년 부산항을 개항했다. 시대적 흐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힘에 굴복해 항구를 열면서 일본과 청나라, 그리고 다른 열강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무기력한 ‘열림’은 일본 제국주의의 플랫폼이 됐다. 전리품의 운반을 위해, 또 일제의 대륙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경부선과 경의선 철로로 한반도를 관통하는 기점이 되었다. 이 ‘열림’의 도시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미 1945년 부산의 인구수는 3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부산은 ‘피란’의 도시다. 인구가 밀집되는 도시의 의미로 부산을 만든 것은 6·25 전쟁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전쟁을 피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 무작정 정착한 곳이 이곳 부산이다. 이미 전쟁 후에는 인구가 100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를 이루었다. 피란민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뒷산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아 움막이나 판자촌을 건설하고, 그 산 가운데에 소방차 등 긴급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낸 것이 산복도로(山腹道路)다.

다른 지역에도 이런 산복도로는 있지만, 부산의 산복도로에는 이 도시만의 무언가가 녹아 있다. 산복도로는 부산을 기록한 살아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다. ‘부산의 진짜 얼굴을 보려면 해운대나 광안리가 아니라 산복도로를 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곳이 부산의 역사를 잉태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열림’과 ‘피란’의 도시가 지닌 성정은 ‘넉넉함’이다.

무력하게 열강의 문물을 받아들인 이 도시는 신식 문물에 비해 화려하지 않아도 넉넉했다. 또 전쟁통에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온 피란민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 이 도시는 가진 것이 없어도 넉넉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사이에서 피란민이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며, 또 공존하며 살아간 높은 시민의식을 품은 도시다. 재난과도 같은 전후의 처지를 성실과 근면으로 이겨내어 ‘꿈 많은 사람들이 정답게 사는’ 넉넉한 도시다.

넉넉한 도시는 문화로 꽃을 피운다. 부산의 소울 푸드라 불리는 밀면은 냉면에 비해 양이 푸짐하다. 돼지국밥은 또 어떠한가? ‘새촙지’ 않고 넉넉하다. 원래의 레시피나 재료를 따라가지 못하는 비루함이 이 음식들을 태동했지만, 넉넉함이라는 손맛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부산 식도락의 시그니처가 되도록 관통한 정신은 넉넉함이다.

아울러 성실과 근면으로 열심히 일하고 또 넉넉히 먹어 배부르면 놀 때에는 진심으로 노는 곳이 이곳 부산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사직야구장을 보라. 놀기에 진심이다. 게다가 부산이 낳은 아티스트들은 이미 자기 동네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소박하고도 넉넉한 문화에서 위인들이 나왔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부산 복음병원의 장기려 박사, 고아와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 ‘소년의 집’의 소 알로이시오 신부. 수단이라는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선한 일을 한 송도 태생의 이태석 신부 등은 부산의 넉넉함을 더해 주거나 그 넉넉함을 온세상에 전해 준 위인들이다. 더구나 우리 지역에는 자기가 한 선행마저 선한 일인지 모르고 묵묵히 살아가는 이름 없는 위인이 무수히 많다. 이런 우리들이 넉넉한 도시에서 살아가고 넉넉한 도시를 만든다.

부산 사람이 다른 도시에 가면 느끼는 갑갑함, 이상함은 우리가 수도권이 아닌 변두리에 살아서가 아니다. 우리의 ‘부산 DNA’에 스며든 이 도시의 넉넉함을 다른 도시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힘 없고 비참한 역사가 이 도시를 잉태했지만, 우리는 이 도시에서 넉넉함이라는 ‘새로운 브랜드’(Brand New)를 길어 올렸다. 진정 우리 도시가 기획하고 개발해 매진해야 할 가치는 ‘다이나믹’ 하다거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랍답게 살도록 키우고 껴안는 넉넉함이라는 도시의 성정이어야 한다.

요즈음의 부산은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가장 빨리 늙어가는 도시, 일 자리가 없는 도시, 홍콩의 야경이 이 도시의 미래라고 예측되지만 미래가 없는 도시…. 전국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높은 실업률, 청년층의 타지역 유출 등 모든 문제가 최근 들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려스럽다.


색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 도시가 원래의 빛깔을 되찾으려면 열려 있어야 하고 넉넉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산은 초고령 사회이기에 노인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또 기반이 없는 젊은이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기다려 줘야 한다. 넉넉함이 도시의 새로운 브랜드가 되도록 시정과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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