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부대 만행에 분노한 日 금수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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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하라면 내 문제라기보다 국가 간의 문제였다."
만화 '아홉 개의 비누'는 일본인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아홉 개의 비누'는 이해경의 창작 만화다.
'출판 만화'가 귀한 시대라 '아홉 개의 비누'는 더없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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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여인 사랑한 인간적 일본인
- 아버지가 만든 비누 비밀 파헤쳐
- 순정만화 필선… 생체실험 고발
“굳이 말하라면 내 문제라기보다 국가 간의 문제였다.”
만화 ‘아홉 개의 비누’는 일본인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이름은 후지무라 겐조이며, 아버지를 잘 둔 덕에 징용도 피하며 조선총독부에서 서기관으로 일한다. 조선 여성 후란과 사귀며, 제국 일본의 전쟁 광기에서 비켜선 ‘금수저’ 청년이기도 하다. 1944년을 배경으로 한다.
만화가 이해경(71)이 악명 높은 일본 관동군 731부대와 인체 실험용으로 희생된 조선 여인들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비누가 매개다. 겐조 집안은 대대로 고급 비누를 만들어 왕가에 공급하는 장인 가문이다. 겐조의 아버지는 향기로운 비누 아홉 개가 든 상자를 집으로 가져오고, 그중 하나를 골라 목욕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후지무라 겐조는 숨진 아버지가 남긴 비누 작업 일지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비누의 주원료는 기름이란다.… 기대했던 재료가 왔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우리 군인들을 위하여 여자들이 필요했다. … 그러나 731부대는 그보다 더 중요한 실험을 했고….” 읽는 겐조의 손이 떨린다. “아울러 폐기되는 여자도 있었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실험들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나도 함께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천황께 올릴 이 비누는 일생일대 최고의 완성품이라 할 수 있겠다.”
남은 비누의 행방을 쫓던 겐조는 아버지에게 절망하고 일본 제국에 분노한다. 겐조는 아버지의 심장마비가 우연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아버지가 만든 비누를 사용한 일본인만 죽는 것은 조선 여인들의 복수라는 것을.
혼령이 깃든 비누가 처단할 대상은 아홉 명이다. 비누 장인, 일본 헌병대장, 경성제대 의대 교수, 사쿠라 농장 주인, 내과의사, 수의사, 총독부 형사과장, 조선인 군수품상 등 일제의 기득권층이다. 조선인과 조선인을 따뜻하게 대하는 일본인은 예외가 된다. 연인을 위해 희생을 자처하는 겐조가 그러하고 산청 출신의 위안부 명이도 위기에서 벗어난다.
‘아홉 개의 비누’는 이해경의 창작 만화다. 순정만화 필선으로 묵직한 주제를 풀었다. 부산 초량 출신인 이해경은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만화로 극복한 이다. 1972년 한국일보에 ‘초상화의 비밀’로 데뷔했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2019~2021년)을 지냈다. 여전히 펜과 종이와 더불어 만화가의 결을 짓는 중이다.
“가깝고도 먼 일본이라는 나라에도 양심적인 인간이 있기 마련”이라며, 조선 여인을 사랑하는 ‘인간적인 일본인’을 묘사하고 싶었다고 이해경 작가는 말한다. 아날로그 펜으로 선의 맛을 살렸고 디지털로 채색을 보탰다. ‘출판 만화’가 귀한 시대라 ‘아홉 개의 비누’는 더없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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