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나이 12.5세 로커들의 반란 “어리다고 기죽지 말고 소리 질러!”

이태훈 기자 2024. 1.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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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쿨 오브 락’ 주연 3인
글룰리와 10대 배우 핀보·처칠
각자 무대에서 실제 연주하는 악기를 들자,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주역 세 배우의 표정이 록 콘서트장의 뮤지션이 된 듯 장난기로 가득해졌다. 왼쪽부터 기타리스트 ‘잭’ 역의 해리 처칠(12), 임시 교사가 된 로커 ‘듀이’ 역의 코너 글룰리(30), 베이시스트 ‘케이티’ 역의 에메랄드 핀보(10). 글룰리는 연습할 때 이름 ‘코너’에 성씨 ‘김’을 붙여 ‘김코너’라고 쓴 티셔츠를 입는다. /장련성 기자

이 공연은 매일 밤 ‘록 스피릿’으로 들썩인다. 아역 배우 뮤지션 ‘영 캐스트(young cast)’ 17명의 평균 나이는 12.5세. 이 어린 배우들이 직접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등 악기 라이브와 노래를 소화한다. 성인 프로 뮤지션 뺨치는 솜씨. 객석 발밑에서부터 비트가 둥둥 울리기 시작하면 객석은 박수와 환호로 떠들썩하다. 기적 같은 무대다.

지난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의 주연배우 세 사람을 첫 공연을 앞둔 오후에 만났다. 2017년 브로드웨이를 시작으로 줄곧 주인공 ‘듀이 핀’을 맡은 코너 글룰리(30)와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두 어린 배우 기타리스트 ‘잭’ 역의 해리 처칠(12), 베이시스트 ‘케이티’ 역의 에메랄드 핀보(10).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처칠과 핀보를, 글룰리는 삼촌처럼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며 인터뷰에 응했다.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주역 세 배우. 왼쪽부터 베이시스트 ‘케이티’ 역의 에메랄드 핀보(10), 임시 교사가 된 로커 ‘듀이’ 역의 코너 글룰리(30), 기타리스트 ‘잭’ 역의 해리 처칠(12). 글룰리는 연습할 때 이름 ‘코너’에 성씨 ‘김’을 붙여 ‘김코너’라고 쓴 티셔츠를 입는다. /장련성 기자

처칠은 오직 기타 연주 실력으로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 준결승까지 진출한 기타 신동. 그룹 퀸의 브라이언 메이 공연 무대에 올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그는 “다섯 살 때 처음 ‘스쿨 오브 락’을 보고 반해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열한 살 때 이 뮤지컬의 영국·아일랜드 투어 무대에 서게 됐을 땐 꿈만 같더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나이는 상관없다는 걸, 마음먹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이에요. 외국에 온 건 한국이 처음이라 더 설레고, 공연에 최고의 에너지를 불어넣고 싶어요.” 처칠은 “클래식 기타만 쳤던 극 중 잭이 처음 전자 기타를 잡고 일부러 서툴게 연주할 때가 제일 어렵다”며 웃었다. 그는 제 키보다 커 보이는 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성인 로커 못지않은 무대 매너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핀보는 인터뷰 땐 손가락으로 머리를 꼬며 조용하고 예의 바르게 말하는 열 살 소녀. 하지만 무대에선 입술을 삐죽 내민 ‘케이티 표정’을 장착하고 엄청난 파워가 느껴지는 베이스 연주를 선보인다. 그는 “수줍음이 많고 대화하는 법을 잘 몰랐는데 공연을 하며 성격이 바뀌었다”고 했다. “모두 서로 믿고 무대에 서면 서로에게 힘이 되는 커다란 가족 같아요.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그래픽=이철원

어린 배우들은 영국 정부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부와 일, 휴식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 매일 아침 3시간 홈스쿨링 수업을 받으며 일과를 시작해 연습과 공연을 이어가는 일정. 영 캐스트가 17명이나 되는 것도 한 명이 배역 2~3개를 맡아 번갈아 무대에 오르며 충분히 쉬게 하려는 배려다. 해리는 “아빠가 함께 한국에 왔지만 영국에 있는 엄마와 하루 두 번은 꼭 통화한다”고 했다. “가족이 보고 싶고 친구들과 축구하던 것도 그립지만, 공연도 너무 즐거워서 한국에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어요.” 에메랄드도 “부모님이 곧 한국에 올 예정”이라고 했다. “시차 때문에 시간 맞추기 어려워도 가족들, 친구들과 수시로 문자 주고받고 통화하며 이겨내요. 함께 공연하는 친구들이 이젠 다들 가족 같아서 큰 힘이 돼요.”

이 뮤지컬의 어떤 점이 어린 배우들을 사로잡았을까. 에메랄드는 “아이들도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고 어른들은 거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이 뮤지컬의 메시지가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뮤지컬에서 엄격한 규율을 가진 명문 사립학교 학생들은 실패한 록 뮤지션 출신의 임시 교사를 만나면서, 록 밴드를 결성해 밴드 배틀 출전을 준비한다. 부모의 바람에 맞춰 명문대 진학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라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 가는 좌충우돌 소동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스쿨 오브 락' 2024년 월드 투어 공연 첫 날 모습. /이태훈 기자

글룰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운 배우인지, 무대 안팎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매일 놀란다”고 했다. “돈과 밴드에 대한 이기적 욕심으로 학교에 간 극 중 ‘듀이’는 아이들을 만나 오히려 인간다운 가치를 깨닫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돼요. 저 역시 이 공연을 통해 차이를 인정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 더 큰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뮤지컬 원작은 주연배우 잭 블랙을 세계적 스타로 만든 동명 영화(2003). 글룰리는 “잭 블랙과 짐 캐리를 합쳐 놓은 듯한 자신만의 듀이를 창조했다”(협력 연출 크리스토퍼 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영화를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던 제가 이 뮤지컬에 주역으로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며 “7년여 동안 ‘듀이’로 무대에 서면서 미치도록 흥분해서 이리저리 에너지를 뿜어내기만 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내 호흡, 나만의 방식으로 공연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더 나은 아티스트가 되는 것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연결된 하나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가르쳐준 게 매일 기적 같은 밤을 함께하는 어린 배우들입니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 2024년 월드투어 공연 사진. 하버드와 예일대 진학이 목표인 명문 사립학교 호러스 그린의 모범생이지만 무대에 서면 힘찬 연주를 선보이는 베이시스트 '케이티' 역의 에메랄드 핀보(10)와 아이들과 밴드를 꾸려 밴드 배틀 경연대회에 참여하려는 가짜 임시 교사 '듀이 핀' 역의 코너 글룰리(30). /에스앤코

뮤지컬에는 영화에서 가져온 노래 3곡과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을 쓴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새로 쓴 14곡, 록과 오페라 명곡들까지 20여 곡이 흐른다. 웨버의 초기작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처럼 신나는 로큰롤로 가득한 작품. 마지막 밴드 경연 장면에선 객석과 하나가 된 록 콘서트장처럼 바뀌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3월 24일까지 서울 공연을 한 뒤 부산으로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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