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박해·전쟁 겪으며 자유투쟁 사상 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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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현재 튀르키예)이 그리스를 통치할 때인 1883년 크레타섬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나 기독교 박해와 독립 전쟁을 겪으며 자랐다.
여기서 자유를 투쟁해 찾으려는 사상이 움텄다.
20대엔 베르그송(생의 철학)과 니체(초인 사상)를 받아들였다.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 외 '미할리스 대장' '붓다' '오디세이아' '최후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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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현재 튀르키예)이 그리스를 통치할 때인 1883년 크레타섬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나 기독교 박해와 독립 전쟁을 겪으며 자랐다. 여기서 자유를 투쟁해 찾으려는 사상이 움텄다. 20대엔 베르그송(생의 철학)과 니체(초인 사상)를 받아들였다. 30대에 단테 복음서와 불경에 빠져들었다.
1919년(36세) 동향 베니젤로스 총리를 만나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일했다. 30대 후반에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 행동주의를 받아들였다. 1928년(45세) 러시아 찬양 연설을 한 뒤 그 나라 전역을 돌아봤다. 안면 습진을 앓아온 카잔차키스는 1953년(70세) 오른쪽 눈 시력을 잃었다.
1957년(74세)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다가 아시아 독감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독일로 갔는데 그곳에서 백혈병으로 숨졌다.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 외 ‘미할리스 대장’ ‘붓다’ ‘오디세이아’ ‘최후의 유혹’. 노벨문학상 후보로 두 번 지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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