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문학이 깃든 도시
얼마 전 일본 마쓰야마에 갔다. 도시는 온통 일본 현대문학의 아버지이자 과거 1000엔짜리 지폐의 주인공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의 소설 ‘봇짱(坊っちゃん·도련님)’ 관련 콘텐츠로 가득했다. 소설 속 봇짱이 먹었던 경단엔 ‘봇짱 경단’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봇짱이 즐기던 온천 입구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시계탑이 지역 명물로 자리 잡았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노면 전차의 이름도 ‘봇짱 전차’였다.
인구 51만 마쓰야마를 먹여 살리는 것이 100여 년 전 세상을 뜬 나쓰메 소세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사실 나쓰메는 소설 ‘봇짱’에서 마쓰야마에 대해 ‘볼 것이라곤 없고 사람들조차 교활하다’는 식으로 비판적 평가만 줄곧 늘어 놓았다. 심지어 마쓰야마를 떠나면서 ‘이 부정한 도시를 떠나니 살 것 같다’는 악담까지 했다. 그런데도 마쓰야마는 나쓰메 소세키와 봇짱의 도시가 돼 있다. 인문 콘텐츠에서 중요한 것은 진위의 분별이 아니라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우리 도시에는 어떤 인문 콘텐츠가 깃들어 있을까? 도시와 관련된 문학을 찾을 수 있다면 문학 속 주인공이 되어 걷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거리와 골목의 풍경을 만드는 건 어떨까. 활용할 수 있는 문학이 마땅치 않다면 이런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도시의 공원에 ‘문학이 깃든 식물원’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문학에 나오는 꽃과 나무를 계절마다 배치하고 그 옆 안내판에 QR코드를 넣어서 그 꽃과 나무에 관련된 문학 구절 읽는 목소리를 듣게 한다. 인근에 작은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나오는 싱아로 만든 샐러드나 허브티를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문학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문학에 나오는 꽃·나무도 배치하면 외국에서 온 손님도 거닐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다.
인문 콘텐츠가 깃든 도시는 풍성해진다. 높은 건물 올리고 새로운 길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일은 오직 인문 콘텐츠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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