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도시의 정원사] 그리운 자연… 현대인은 ‘도시 정글’을 꿈꾼다

박원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실장 2024. 1.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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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패션모델 오크스, 아파트에 화분만 1100개
쇼핑몰·호텔·빌딩 등 온갖 식물 실내·벽면 채워
치열한 도시… 가까이서 식물 기르며 자연 열망
과거 이집트·로마·한중일 분재도 가드닝 문화
옛 바빌론 공중 정원처럼… 新'도시 정글’ 시대
일러스트=이철원

뉴욕의 패션모델이자 환경 운동가인 서머 레인 오크스(Summer Rayne Oakes)는 식물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거주하는 아파트 안에 무려 560여 종류에 이르는 식물 화분을 1100개 이상 기르고 있는데, ‘플랜트 원 온 미(Plant One On Me)’라는 타이틀로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은 54만명에 육박하는 구독자를 자랑한다. 요즘 인기 있는 플랜트플루언서(plantfluencer-식물과 인플루언서를 합친 말)인 셈이다.

필자가 몸담은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소속 국립세종수목원의 온실 담당 직원도 아파트 안을 온통 정글처럼 초록 식물로 가득 채워 매스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그는 수목원에서 식물을 가꾸고 전시하느라 종일 구슬땀을 흘리고 나서도 퇴근 후 집에 가면 아끼는 식물을 하나하나 보살피며 큰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한다. 식물을 사랑하는 ‘식집사’의 일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가 하면 자기가 직접 번식시킨 귀한 식물들을 가드닝 노하우와 함께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식물 전도사이기도 하다.

이들처럼 열렬한 식물 마니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집 안 거실이나 베란다에 화분 한두 개 정도 키우지 않는 집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집들이 선물로 받은 커다란 몬스테라 화분이나 생일 선물로 받은 앙증맞은 다육이 화분, 혹은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정성껏 만든 테라리움 등 주변을 살펴보면 꽤 많은 식물 화분이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 때도 집 안 어딘가에는 항상 식물 화분이 있었다.

우리는 왜 식물을 가까이 두게 되었을까?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 사랑)’ 개념을 통해 소개한 것처럼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생명체와 유대를 추구한다. 우리 유전자 속에는 원래부터 생명 사랑의 본능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연을 자주 찾는 이유다. 숲속을 걸으며, 이리저리 눈을 움직여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자연의 사물들을 바라보고, 온갖 미묘한 냄새와 소리를 감지하는 행위는 평소에 잠자고 있던 오감을 깨워 우리 몸과 마음을 살아 있는 느낌으로 충만하게 해준다.

바쁜 일상과 환경적 제약 탓에 자연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도시민들은 가까이에 식물을 기르며 자연을 열망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한다. 마음에 드는 식물을 실내 공간으로 들여와 교감하며 곁에 두고 보살피는 반려 식물 개념은 익숙해진 지 오래다.

이미 수많은 연구로 잘 알려져 있듯, 초록 잎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해 준다. 꽃은 여러 긍정적 감정을 일으켜 마음을 행복하게 해준다. 좋은 흙과 빛, 물과 거름으로 식물을 키우는 과정은 그 자체로 치유하는 시간이자 긍정 에너지 충전 기회가 된다. 질감과 색감, 꽃 피는 시기도 다양한 크고 작은 식물 화분을 집 안에 들여놓고 키우면 가드닝의 여러 좋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특히 좋아하는 식물을 하나하나 모으는 일은 또한 우리에게 내재한 채집 본능, 즉 수백만 년 전부터 인류가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확보하여 안도감을 느끼고자 하는 내재적 욕구에도 충실한 자연스러우면서도 건강한 활동이다. 식물 수집은 더 나아가 자신만의 소중한 컬렉션으로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옛날 우표와 LP판부터 오늘날 캐릭터 피겨까지 갖가지 물품을 수집하며 애장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자부심과 행복감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살아 있는 생물을 기르는 일은 더 숭고한 가치를 지닌다. 어쩌면 현대의 식물 수집가들은 야생 먹거리가 아니라 급변하는 도시의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지 않고 살아남고자 위안 삼을 만한 대상으로 식물을 수집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인류가 식물을 실내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역사는 고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인들은 고인 무덤에 식물을 두어 사후 세계의 영원한 삶을 빌었고, 로마인들은 빌라에 정원을 만들고 회랑과 실내 공간에도 식물을 배치하여 풍요로움을 즐겼다. 17세기 초 영국의 식물학자 휴 플랫(Hugh Platt)경이 ‘식물 낙원’(Floraes Paradise)이라는 책을 통해 다양한 식물로 장식한 매혹적 실내 공간 개념을 소개한 이후로 실내 식물의 장식적 효과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늘었다.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는 전 세계 열대지방에서 도입된 화려한 잎, 이국적인 꽃들과 함께 실내 식물의 인기가 절정을 이루었다.

예부터 한국, 중국, 일본에서 발달한 분재 역시 화분에 다양한 잎과 꽃, 열매를 감상할 수 있는 식물을 고도의 원예 기술로 가꾸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늘 가까이에서 즐기고자 한 훌륭한 가드닝 문화다. 이는 바이오필리아 철학과 장인 정신, 예술성 모두를 충족해 주는 것이었다. 특히 15세기 중반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 식물 전문서 ‘양화소록’의 저자 강희안은 손수 엄선한 꽃과 나무를 화분에 식재하여 기르는 법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겼다.

오늘날 식물을 모티브로 한 카페를 비롯한 대형 쇼핑몰, 관공서, 주거 공간과 사무 공간에 적용하고 있는 플랜테리어(Planterior) 개념은 이 모든 실내 식물의 재배 역사와 문화사, 현대의 발달한 가드닝과 인테리어 기술을 융합한 산물이다. 밀라노의 보스코 베르티칼레(Bosco Verticale) 빌딩, 싱가포르의 파크로열 컬렉션 피커링(Parkroyal Collection Pickering) 호텔처럼 실내외 할 것 없이 온갖 식물이 정글을 이루며 벽면과 테라스 공간을 채우는 아파트와 호텔, 빌딩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기원전 6~7세기경 만들었다고 여기는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 현실 세계에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 전체 면적의 3%를 차지하는 도시 지역에 전 세계 인구의 55%가 거주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앞으로도 급진적 개발과 도시화를 피할 수 없다면 생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의 정글화와 가드닝 문화의 본격 확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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