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만화를 현실로 만든 일본 스포츠
어릴 적 일본 스포츠 만화책을 자주 읽었다. 주인공들이 성장한 끝에 세계 무대에서 자웅을 겨루는 결말이 많았다. 아무리 꿈을 키워주는 소년 만화라지만, 고등학생 팀이 세계 성인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이야기도 더러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나이에도 납득이 안 가는 전개에 생각했다. ‘일본인들은 정도껏이라는 걸 모르나?’
터무니없어 보이던 만화책들은 지금 놀랍게도 현실에 가깝다. 일본 구기 종목 대표팀의 기량이 세계에 견줄 만한 수준이 된 것이다. 일본 야구 대표팀은 지난해 3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결승에서 세계 최강 미국을 꺾고 우승했다. 일본 간판 오타니 쇼헤이가 마지막 수비에서 같은 팀 동료였던 세계 최고 타자 마이크 트라우트를 삼진 아웃 시키며 일본을 왕좌에 앉혔다. 20년 전 만화책에서 읽었던 것 같은 이야기다.
일본 농구 대표팀은 지난해 9월 2023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에서 유럽 강호 핀란드를 격파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3승 2패와 함께 48년 만에 올림픽 자력 진출로 이어졌다. 그것도 핵심 전력이던 미 프로농구(NBA) 선수 루이 하치무라 없이 이뤄낸 성과였다. 아시아를 주름잡던 중국이 1승, 이란이 무승을 거둔 대회였다. 한국 농구가 7회 연속 올림픽에 나서지 못한 것과 비교됐다.
일본 축구 대표팀은 최근 A매치 11연승을 달리고 있다. 그중에는 독일 같은 강호도 있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이 독일을 2대1로 이겼을 때만 해도 운이라 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일본이 일방적인 경기 끝에 4대1로 다시 크게 이겼다. 독일은 이 패배에 충격을 받아 123년 만에 처음으로 사령탑을 경질했다. 축구 본고장 유럽도 일본 축구의 위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일본 스포츠가 약진한 건 체계적인 계획 수립 덕분이라고 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011년부터 5년 단위 계획을 세워 실천했다는 건 유명하다. 그러나 더 앞섰던 것은 일본이 품었던 커다란 열망이었다. 일본은 늘 목표를 세계 무대에 두고 있었다. 모두가 비웃었던 그 만화책들은 일본이 구체적으로 그려냈던 꿈이었다. 큰 꿈을 토대로 세부 계획을 세우고 차곡차곡 실천해 나간 결과 지금의 열매를 맺어낸 것이다.
일본 프로농구 B리그는 앞으로 외국인 선수 제도를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종전 2명만 코트에 설 수 있던 외국인 선수를 2026년부터는 4명까지 뛰게 한다. 일본 선수들이 뛰지 못하면 어떡하느냐는 의문에 시마다 신지 B리그 사장은 딱 잘라 말한다. “억지로 일본 선수를 뛰게 한다고 일본 농구가 강해진다고 믿지 않는다. B리그 외국 선수도 버거워하면서 세계 무대를 꿈꾸는 건 무리다.” 일본의 접근 방식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다.
한국 프로농구는 외국인 선수 신장을 2m 이하로 제한하거나, 코트에서 1명만을 뛰게 하면서도 어떻게 그 비중을 더 줄일 수 있을지 지금도 고민한다. 프로야구 역시 일본은 외국 선수를 무제한으로 보유하고 4명까지 출장할 수 있게 한다. 한국은 3명 보유, 3명 출전으로 일본보다 적다. 무엇이 더 좋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테지만, 한국 스포츠가 꾸는 꿈의 크기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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