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공부하다 음악에 영혼 뺏겨… 뮤지컬은 내게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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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떤 파동은 운명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모든 자유를 뺏기고도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가 된 뮤지컬 '일 테노레'의 주인공 윤이선의 삶 자체도 그러하다.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초연된 창작뮤지컬 '일 테노레'에서 윤이선 역을 맡은 배우 박은태(43) 역시 "내게 뮤지컬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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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 빠진 1930년대 주인공… 공부만 하던 나와 평행이론 같아”
미성의 베이스-바리톤 한계 딛고… 성악훈련 끝 테너까지 음역 확장
공연은 1930년대 경성에서 오페라에 빠진 의대생 윤이선과 독립운동가 서진연, 이수한이 저마다의 꿈을 좇는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 오페라의 역사적 인물로 꼽히는 테너 이인선(1906∼1960)의 삶을 재창작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등을 만든 공연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작으로 윤이선 역은 박은태와 배우 홍광호, 서경수가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박은태와 윤이선의 간절했던 20대 시절은 묘한 평행이론을 달린다. 공부만 아는 모범생이 돌연 음악에 영혼을 뺏기며 인생을 베팅하는 점에서다. 한양대 경영학부에 다니던 박은태는 학업과 공연을 병행하느라 입학 9년 만에야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노래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허당’인 것마저 닮아 감정이입이 잘된다”고 했다. 이어 “이선과 달리 나의 부모님은 다행히도 꿈을 지지해줬는데 세 아이의 아버지가 돼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깨달았다. 만약 아이가 노래하겠다고 하면 뜯어말릴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오페라를 향했던 윤이선의 마음은 시간이 흘러 사랑에 대한 간절함으로도 확장된다. 박은태는 인생에서 가장 간절했던 순간으로 걸그룹 ‘파파야’ 멤버 출신인 아내를 짝사랑했을 때와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폐암 판정을 받았을 때를 꼽았다. 그는 “그때의 간절함을 마음에 품고 첫 대사를 읊으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작두 타듯 연기하게 된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는 작품은 처음”이라고 고백했다.
공연은 ‘꿈의 무게’ 등 19세기 오페라적 선율이 가미된 넘버들로 이뤄졌다. 이날 공연에서 박은태의 투명한 미성은 18인조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져 서정성을 극대화했다. 그렇지만 미성을 가진 그에게 테너라는 배역은 자기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일이었다.
“화통 삶아먹은 큰 성량의 목소리를 타고나지 못해 출연을 주저했어요. 그러다 이인선 씨가 ‘동양의 스키파’라고 불렸던 사실을 알게 되며 자신감을 얻었죠. 티토 스키파는 미성으로 유명했던 20세기 테너예요. 1막 마지막 아리아를 부를 때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지만 ‘내가 스키파다’라고 상상하며 마음을 겨우 진정시킵니다.”
이번 공연에선 그가 15년간 갈고닦은 성악적 기량을 들려준다. 베이스, 바리톤에 한정된 음역대가 콤플렉스였던 그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성악 훈련을 받으며 테너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팬데믹 이후 ‘내가 이토록 소중한 관객을 만날 자격이 있는가’를 거듭 고민했고 음악, 연기 공부에 매진했다”며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2년 전부턴 일상의 낙이던 퇴근길 맥주 한잔도 끊었다. 자연스럽게 친구는 줄었다”고 했다.
자정까지 이어진 인터뷰에도 그에게선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공부밖에 모르던 경영학도에서 대극장 주연 배우까지 오게 된 순수한 열정만이 느껴졌다. 어느덧 19년 차 배우가 된 그에게는 얼마만 한 꿈의 무게가 남았을까.
“여전히 무대마다 죽을 만큼 떨리고, 컨디션 관리에 매몰돼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땐 자괴감이 들어요. 그렇지만 뮤지컬은 수천억과도 맞바꿀 수 없어요. 80대가 돼서도 노래하는 것, 그게 제게 남은 꿈입니다.”
다음 달 25일까지, 8만∼16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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