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지구의 평면도, 지도
나는 지도를 좋아한다. 지도를 보며 공간을 파악하고 그 공간에 끼친 지리와 기후의 영향, 그 공간이 지닌 역사적 의미 등을 알아보는 일을 즐긴다. 서울과 위도가 비슷한 유럽의 도시는 어디일까. 런던? 베를린? 파리? 로마? 많은 사람이 로마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는 신의주보다 더 북위에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 반도의 최남단도 서울보다 위도가 높다. 파리는 하얼빈보다 더 북위에 있고 런던은 그보다 더 북극에 가깝다. 그런데 서울은 왜 파리나 런던보다 더 추울까 등등.
지도에서 위대한 영감을 얻은 역사적 발견도 있다. 1910년 독일 기상학자 알프레드 베게너는 세계지도를 보다 남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선과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선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로부터 연구와 답사를 시작해 그 유명한 대륙이동설을 주창했다. 모든 대륙은 원래 하나로 뭉쳐 있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 흩어져 지금의 5대양 6대주가 됐다는 이론이다. 한 기상학자가 제시한 획기적인 판게아(Pangaea) 이론은 당대 완고한 지질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조롱의 대상이 됐지만 지금은 학계의 정설이 됐다.
비행기 좌석 앞 화면을 통해 남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지도를 본다. 지난가을 카타르항공 여객기에서도 나는 영화 대신 지도를 보고 있었다. 아랍인들은 중동의 지도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의 지도에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없었다. 아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없었다. 그 지역에는 팔레스타인 영토(Palestinian Territory)라는 표시만 있을 뿐이었다. 아, 이곳에서 반드시 변란이 일어나겠구나…. 귀국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그 지도 위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된다. 지도는 그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도착 다음날 카타르 수도 도하에 있는 국립도서관 고문서 전시실에 갔다. 나는 역시 고지도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최초의 근대적 세계지도 '지구라는 극장'(Theatrum Orbis Terrarum)과 마주했다. 네덜란드의 지리학자이자 지도제작자인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가 1570년 안트워프에서 발간한 당대 최고 정밀도의 세계지도다. 그런데 그 지도에는 한반도가 없었다. 중국과 일본은 상세히 그렸으나 한반도는 싹둑 잘라낸 듯 그 자리엔 바다만 그려져 있었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호주, 동남아시아의 수많은 섬까지 상세히 그렸지만 한반도는 지도에 없었다. 유럽인들 입장에서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발견한 땅이었던 것이다. 육지에서는 중국이, 바다에서는 일본이 유럽인들의 한반도 접근을 방해했다. 그 지도가 발간된 지 22년 후 일본은 포르투갈 기술로 만든 조총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했다. 그것이 임진왜란이다.
지도는 지구의 평면도다. 평면도를 플랜이라고도 한다. 플랜을 인화한 것을 청사진이라고 한다. 플랜과 청사진은 어떤 일의 구체적인 계획을 뜻하는 대명사로 쓰이는 말이다. 무대미술가로 일하는 나는 매 작품 평면도를 구상하고 그린다. 배우들을 무대에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등퇴장하며 움직이게 할지, 무대장치와 조명을 어디에 설치할지, 그 모든 플랜이 평면도다. 그 평면도를 실제 크기로 확대해 연습실 마룻바닥에 테이프를 붙여 그려놓고 그 선에 맞춰 배우들은 연습을 한다. 평면도에 표시되지 않은 것은 실제 무대장치로 제작되지 않는다. 간혹 도면에서 누락된 부분을 추가로 제작, 무대에 올리기 위해 큰 혼란을 겪기도 한다. 시간이나 비용의 문제로 결국 그 부분을 제외하고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실수든 고의든 대형사고다.
나는 지도를 좋아한다. 언제 어디에 가든 지도를 찾아본다. 내 눈은 항상 세계지도의 동쪽 끝 한반도로, 동해로, 그리고 독도로 향한다. 그렇다. 나는 독도를 보기 위해 지도마니아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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