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한동훈이 빠지기 쉬운 세 가지 착각
다른 이슈에 묻히리라 여긴다면 큰 착각
韓, 싸움꾼 이미지보다 비전 제시하고
서민·약자 다가가 기득권 이미지 벗어야
세련되고 겸손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국힘 지지자들은 오랜만에 마음 줄 대상을 찾았다는 듯 열광했다. 동시에 우려했던 바도 점점 더 현실로 굳어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인다.
골목 밖에서는 선명히 보이는데, 지지자의 환호로 가득찬 골목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함정이 있다. 한 위원장이 경계해야 할 함정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김건희 여사 문제를 이대로 뭉개고 가도 괜찮을 거라는 속삭임이다. 당장은 여론이 안 좋지만 곧 공천이 본격화하면서 온갖 뉴스가 쏟아지면 뒷전으로 묻힐 것이라는 기대다. 물론 착각이다.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찍었지만 대통령의 당 장악 시도, 김 여사 스캔들로 인해 한 발짝 물러선 중도층은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냉정히 지켜보고 있다.
일시적 관심이 아니다. ‘아바타론’의 진위를 판가름할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긴다. 정권의 공정성에 대한 평가와 보수진영 미래 주자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저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설령 총선 결과가 여당에 나쁘지 않게 나오더라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야당은 대선까지 끌고 갈 것이다. 차기 정권을 어느 쪽이 차지하든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일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한 위원장의 책임도 있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를 기소하든 불기소 처분하든 진작 종결지었어야 하는데 질질 끌다 특검 빌미를 제공했다. 야당의 특검 공세는 이미 올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19개월 넘는 법무장관 재임 동안 한 장관도 방치했다.
명품백은 더더욱 간단해 김영란법에 따라 국민권익위가 며칠이면 조사를 끝낼 수 있는 사안이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경우 공여자는 ‘직무관련성’과 상관없이 무조건 처벌 대상이 되지만 받은 사람은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김 여사는 윤리적 책임만 지게 될 공산이 컸는데 무조건 피하다가 종양으로 키워버렸다.
물론 야당이 밀어붙인 현행 특검법은 상식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도 인정할 수 없는 악법이다. 그렇다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특검 선정은 대한변협 등 공신력 있는 외부기관 추천으로 하고, 수사 개시는 총선 직후에 하는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이렇게 명료한 해결책이 보이는데도 풀지 못하는 게 답답하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고 한다. 김 여사의 심신이 스트레스에 워낙 취약한 상태여서 합리와 대의만 앞세워 밀어붙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대통령이기 때문에 해야 하고, 보수의 명운을 책임진 여당 대표이기 때문에 그렇게 설득해야 한다.
한 위원장은 비상 상황을 타개하라고 영입된 지휘관이다. 국회의원 숫자 감축, 특권 폐지 등은 멋진 안타지만 그런 안타만으로 소임을 다하는 게 아니다. 여당의 비상 상황은 무엇인가. 바로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불통 이미지 리더십이고, 둘째는 부인 문제로 인해 상식과 공정이라는 트레이드 마크가 흔들린 탓이다.
자기 편은 무조건 감싸고 돌았던 좌파권력과는 역시 다르다고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해야한다. 보수 전체가 피해를 떠안지 않게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 위원장이 경계해야 할 두 번째 함정은 투쟁 선봉장 이미지의 효용성이다. 취임사에서 586 청산을 강조했는데 옳은 방향이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집권당 대표의 주된 메시지일 수는 없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우선 역할은 비전 제시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도전, 과제를 말하면서 그 일환으로 수구 얼치기 좌파세력 청산이 제시됐어야 한다. 투쟁하러 나온 싸움닭 이미지로 자신을 가둬선 안 된다.
그제 마감한 전국 순방도 마찬가지다. 지역 비전 제시보다는 야구팬, 학교 다닌 기억 등 사적 인연을 강조했는데 집권당의 다크호스에 대한 기대에 비해 진부한 행태다. 집권 보수당의 횃불을 들고 나왔으면 거기에 걸맞는 비전을 제시하고 실현가능하든 불가능하든 그 목표를 향해 함께 가자고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
한 위원장이 경계해야 할 세 번째 함정은 정치인으로서의 태생적 약점을 수사(修辭)나 제스처만으로 만회하려는 안이함의 늪이다.
타워팰리스에 살고 명문대 학벌, 검찰 고위직 출신 장인과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 아내를 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 풍토에선 일정한 핸디캡이 될 수 있다. 머잖아 야당과 좌파는 그를 강남 특권층으로 몰면서 재산을 시비 걸고 처남 문제까지 따지고 들 것이다. 공작과 가짜뉴스 인신비방을 평생 업으로 삼아온 이들이다.
한 위원장은 “서민과 약자의 편”을 강조해 왔는데, 말로 그친다면 위선으로 들릴 소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입만 열면 약자 서민을 외쳤던 조국 전 장관을 비롯해 강남 좌파 민주당 인사들의 위선에 진저리를 쳤던 국민들이다. 삐딱한 시선을 이겨낼 유일한 방법은 진정성과 일관성 지속성이다.
검사 이미지도 쉽게 벗기 힘든 굴레다. 누구나 ‘우리 국민이 두 번 연속 검사 대통령을 뽑을까’라고 자문해 볼 것이다. 한 위원장 스스로도 그럴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상대에 대한 추궁과 결과물에 대한 심판보다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생산력, 창의력, 설득과 공감 능력이 검사 출신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공천 결과가 ‘역시 검사 출신’ 낙인이 찍힐지, ‘정말 다르네’가 될지 갈림길이 될 것이다.
박수와 환호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눈앞의 구름 인파만 보고 박수 소리만 듣다가는 골목 입구에서 팔짱낀 채 냉정히 지켜보는, 구름 인파보다 몇백 몇천 배 많은 대중의 존재를 잊기 십상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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