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0, 타이브레이크 30분' 블린코바 혈투 끝 승리.. 리바키나 탈락 [24 AO]
[멜버른=박성진 기자] 22-20.
배드민턴 게임 스코어가 아니다. 테니스에서 보기 힘든 타이브레이크 스코어가 나왔다. 타이브레이크만 30분이 걸린 대혈투 끝에 안나 블린코바(러시아, 57위)가 3회전에 올랐다. 블린코바가 탈락시킨 선수는 다름아닌 작년 이 대회 준우승자, 엘레나 리바키나(카자흐스탄, 3위)였다.
블린코바는 18일, 호주 멜버른 멜버른파크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단식 2회전에서 리바키나를 6-4 4-6 7-6[22-20]으로 물리쳤다. 현지시간으로 오후 8시 정도에 시작한 경기는 오후 11시가 다 되어서 끝날 정도로 엄청난 혈투가 이어졌다. 그리고 예상 외로 블린코바가 경기의 승자가 됐다.
집념의 블린코바였다. 블린코바는 1세트를 선취하며 주도권을 잡았다. '이 시대의 서브퀸'인 리바키나를 상대로 귀중한 브레이크에 성공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블린코바의 컨디션도 매우 좋은 듯 서브 게임에서는 단 한 번도 듀스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35분만에 끝난 1세트는 블린코바의 것이었다.
2세트는 리바키나가 만회했다. 이날 리바키나의 경기에서 2세트가 가장 깔끔했다. 1세트에 비해 실수가 적었고, 서브의 위력이 1회전 때만큼 살아나는 듯 했다. 이번에는 39분만에 리바키나가 2세트를 챙기며 세트올이 됐다.
3세트는 블린코바가 앞서 나가면 리바키나가 추격하는 형국이었다. 블린코바가 먼저 브레이크를 하면 리바키나가 맞브레이크로 응수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리바키나의 범실이 너무 많았다. 서브에 우위가 있는 리바키나임에도 서브 이후 공격의 정확도가 영 떨어졌다. 포핸드는 네트에 걸리고, 백핸드는 베이스라인을 살짝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블린코바의 서브권을 기껏 브레이크했지만 본인의 서브 게임 관리가 안 되니 경기를 앞서 나가기 어려웠다. 리바키나 입장에서는 3세트 슈퍼 타이브레이크까지 간 것이 다행이었다.
호주오픈 등 그랜드슬램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남자 5세트, 여자 3세트에서의 타이브레이크는 일반 타이브레이크 7점 선승제가 아닌 10점 선승제로 진행된다. 첫 서브 이후 2번씩 서브를 번갈아가며 넣기 때문에 서브에 강점이 있는 리바키나에게 조금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리바키나는 타이브레이크에서 본인 서브권을 살리지 못했다. 블린코바의 서브권을 브레이크하며 리바키나가 본인의 서브권에서 경기를 끝낼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해당 랠리에서 마무리가 안 됐다.
그것은 블린코바도 마찬가지였다. 리바키나의 서브를 잘 방어한 블린코바였지만 역시 끝내기 상황에서는 스트로크가 대부분 네트를 향하거나 사이드라인을 벗어났다. 2점 이상 먼저 도망가는 선수가 없었다.
리바키나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16-15로 리바키나가 앞서 있는 상황에서 심지어 리바키나의 서브권이었다. 서브도 잘 들어갔고 이후 블린코바를 좌우로 흔드는 공격도 꽤 훌륭했다. 그런데 그것을 블린코바가 다 받아냈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수비볼도 집념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리바키나의 마지막 포핸드가 코트 밖으로 벗어났다. 그 포인트를 블린코바가 따내면서 다시금 동점이 됐다. 리바키나에게는 다 잡았던 승리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경기는 계속해 타이브레이크로 이어졌다. 타이브레이크만 30분이 넘는 대혈전이었다. 이 경기의 체어 엄파이어였던 그레고리 알렌스워스 심판마저 헛웃음을 지을 정도로 두 선수의 줄다리기는 끝날 줄 몰랐다.
결국 승리는 블린코바가 차지했다. 블린코바는 21-20으로 앞선 본인의 서브권 상황에서 다시 한번 집념의 수비 신공을 선보였다. 리바키나의 마지막 백핸드가 사이드라인을 완전히 벗어나며 경기가 끝났다. 블린코바는 코트 위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린 반면 리바키나는 굳은 얼굴로 코트를 떠나야 했다.
경기 기록만 보면 블린코바가 이긴 것이 이상한 경기였다. 위너는 리바키나가 더 많았고(리바키나 44, 블린코바 28), 언포스드에러는 비슷한 수준으로 리바키나가 더 적었다(리바키나 46, 블린코바 48). 전체 포인트에서도 리바키나가 121포인트를 득점할 동안 블린코바는 116포인트만 득점했다. 기록 상으로는 리바키나가 이겼어야 정상인 경기였다.
하지만 블린코바를 승리를 이끈 것은 결국 집념이었다. 끈질긴 수비력을 바탕으로 중요한 순간에 포인트보다 더 높은 순위인 게임, 세트, 매치를 잡아냈다. 승부처에서의 집중력은 블린코바가 리바키나에 비해 몇 수는 위였다.
'이 시대의 서브퀸'인 리바키나였지만 이 경기에서는 서브의 위력이 너무 떨어졌다. 에이스는 9개에 그쳤고, 서브 최고 속도는 189km/h로, 192km/h의 블린코바에 비해 떨어졌다. 서브가 평범해지니 리바키나의 경기력도 탑클래스가 아닌 일반적인 수준으로 하락하고 말았다.
WTA에 따르면 이 경기는 그랜드슬램에서 10포인트 타이브레이크 제도가 생긴 이래로 최장 경기 기록이라고 한다.
25세의 블린코바는 이번이 첫 그녀의 호주오픈 3회전 진출이다. 최고 기록은 2017년, 2020년 기록했던 2회전이었다. 그랜드슬램에서 3회전에 도달한 것은 이번이 4번째다. 라이브랭킹은 우선 48위까지 오른 상태다.
반면 지난 대회 준우승자인 리바키나는 충격의 패배를 당하며 호주에서의 일정을 마감했다. 이날 오후 제시카 페굴라(미국, 5번 시드)가 탈락한지 7시간 만에 이번에는 3번 시드 선수가 탈락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작년에 벌어 놓았던 포인트인 1200점을 방어해야 했던 리바키나인데 이번에 2회전에 그치면서 1200점 정도가 고스란히 소멸될 예정이다. 3위였던 세계랭킹은 5위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블린코바는 3회전에서 자스민 파올리니(이탈리아, 31위)를 상대로 다시 한번 업셋에 도전한다. 현역 선수 중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파올리니(163cm)는 타티아나 마리아(독일, 42위)를 6-2 6-3으로 꺾고 3회전에 올랐다.
둘의 맞대결은 20일 펼쳐질 예정이다.
글= 박성진 기자(alfonso@mediaw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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