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자 증언 조롱한 트럼프…“쫓아낸다” 판사 경고에 “바라던 바”
‘아이오와 코커스 압승’으로 추진력을 얻은 미국 대선의 공화당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 유세 일정 속에서도 이틀 연속 법정에 출석했다. 피고로 참석한 그는 소송을 제기한 성추행 피해자가 증언을 하는 내내 상대를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판사로부터 ‘퇴장’ 경고를 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명예훼손 재판에 참석해 원고인 E 진 캐럴의 증언을 들었다. 캐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1996년 백화점 탈의실에서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실이 지난해 5월 법원에서 인정됐음에도 언론 인터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계속해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별도의 소송을 제기했다. 캐럴은 배심원단 앞에서 그가 자신의 주장을 26차례에 걸쳐 거짓이라고 말해 삶이 산산조각 났으며, 각종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술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캐럴 두 줄 뒤에 앉아 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고개를 내젓고 한숨을 내쉬면서 배심원과 캐럴에게 들릴 만큼 큰소리로 “마녀사냥” 또는 “사기”라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루이스 캐플런 판사는 배심원단에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라고 경고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태도를 바꾸지 않자 “당신은 이 재판에 출석할 권리가 있지만, 법원의 명령을 무시한다면 권리가 박탈될 수 있다”면서 “내가 당신을 재판에서 쫓아내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두 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내가 바라던 바다”라고 말했다. 캐럴 판사가 “당신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자, 그는 “당신도 마찬가지”라면서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에도 캐플런 판사를 향해 “나를 증오하는 급진좌파 판사에게 ‘마녀사냥’ 재판을 받고 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지난 11일 열린 다른 민사 재판에 출석해서도 “결백한 사람을 기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해 판사에게 퇴장 명령을 받았다. 그는 재판 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캐플런은 악질적인 판사이고 나에게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며 “솔직히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받고 있는 건 나”라고 말했다.
언론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정 다툼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NYT는 “지난해 5월 성추행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그가 올해 재판에서는 이틀 연속 모습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경선에 나선 후부터 법정 싸움이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전략을 자주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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