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기업도 ‘타이밍’…재무제표로 살펴보는 ‘같은 선택-다른 길’ [투자뉴스 뒤풀이]

2024. 1. 1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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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의도 금융투자업계를 소소하게 흔든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가 하나 나왔습니다.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맥쿼리증권의 보고서입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런 보고서가 나오게 되기까지의 그간 SK이노베이션과 자회사인 SK온이 걸어온 길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과감한 2차전지 투자와 성장 기대감 그리고 물적분할로 단숨에 또 하나의 대형 계열사 탄생을 꿈꾼 길 말입니다. 오늘은 SK이노베이션과 SK온 그리고 그와 같은 길을 조금 먼저 간 경쟁사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해볼까 합니다.

▶맥쿼리증권 보고서를 언급했는데요,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SK이노베이션을 평가하면서 물적분할 후 자회사가 된 SK온 기업가치를 아주아주 낮게 잡았습니다.(We assign no value for SK On)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의 목표주가를 크게 내렸습니다.

2차전지 업체들의 어려움이야 비단 SK온의 문제뿐이 아니죠. 원가 의존도가 큰 2차전지 산업 특성상 최근 원재료 시장 상황은 결코 우호적이지 못합니다. 수요도 신통치 않고요. 위·아래에서 다 압박을 받는 모양새입니다.

다만 SK온이 LG에너지솔루션 등 다른 2차전지 업체에 비해 더 뼈아픈 건, 물적분할까지 하면서 당도하려던 목표인 기업공개(IPO)에서 더 멀어질 수 있단 우려 때문입니다.

해를 거슬러, 물적분할로 돌아가보죠. 물적분할에 대한 비판과 옹호는 여기선 접어두겠습니다. '분할'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사업부문 중 성장성이 큰 2차전지를 위해 대규모 CAPEX 투자가 필요했을 겁니다. 실제로 분할 전 재무상태표를 보면 대부분의 CAPEX 투자가 2차전지 부문에서 이뤄집니다. 막대한 차입이 동반됐고요. 이건 LG화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넓은 땅을 사서 거기에 공장 짓고 기계설비 들여놓으려면 당연히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합니다. 차입금부터 계속해서 조달해 오는 게 당연한 수순입니다. 하지만 차입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다음 방법은 유상증자입니다.

SK이노베이션의 주력 사업은 정유·화학입니다. 2차전지라는 번쩍번쩍 빛나는 보물을 품고 있더라도 정유·화학의 외피를 쓴 기업의 유상증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유상증자 가격은 증자 결의 전 최근 주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2차전지의 미래 성장 기대감을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죠.

때문에 분할 후 IPO를 시키는 건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 공모 당시를 기억하시나요? 여의도에 증권가가 탄생한 이래 가장 많이 붐볐을 것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단숨에 10조원 이상을 확보했습니다.

(만약 LG화학의 신분으로 유상증자는 자금 조달 규모가 적은 것은 물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LG그룹 지배구조상 지주사인 ㈜LG가 LG화학 지배력을 유지하고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하려면 유상증자에 대규모로 참여해 지분율을 유지해야 합니다. 지주사 ㈜LG에 유상증자에 참여할 넉넉한 자금이 있는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외부서 거금을 조달해 와야 하는 상황에 내 돈도 적잖이 넣어야 한다면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SK온도 그와 같은 길을 걷길 꿈꿨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물적'분할에 대한 비판여론이 너무너무 거세진 것입니다. 누구보다 ESG를 강조한 SK그룹입니다. 2023년 3월 주주환원정책을 내놓습니다. SK온이 상장을 하게 되면 SK이노베이션이 현물배당을 하겠다고 말이죠. SK온 물적분할로 졸지에 2차전지 부문의 과실을 따먹을 기회를 잃게 된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겐 더없이 반가운 소식입니다. 주가가 이날 하루에만 10% 넘게 껑충 뛰었죠.

물론 현물배당 발표를 하기 훨씬 전 이미 정관 변경을 통해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주주가치 보호를 위한 생각은 일찌감치 했고 고민도 길게 한 셈입니다.

기존 현금배당에서 현물배당을 추가한 SK이노베이션의 정관 개정 공시 [DART]

문제는 그러는 사이 시간이 계속 흐르고, 돈도 계속 들어갔단 것입니다.

SK온의 재무상태표를 볼까요? 복잡하게 세세한 계정 따지지말고 여기선 굵직하게 보겠습니다. 그래도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는 문제가 없으니까요.

2021년 말 6조8000억원이던 부채가 지난해 3분기엔 20조 이상으로 불어났습니다. 자본총계 가운데선 '기타불입자본'(옛 '자본잉여금')이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 이익잉여금은 줄곧 마이너스(-)네요. 그러니깐 회사가 벌어들여서 쌓아 놓은 돈은 없는 셈입니다. 자산 가운데 유형자산이 5조7000억원에서 18조원을 넘을 정도로 불어났습니다.

종합하면, 차입도 어마어마하게 하고 프리IPO 등으로 추가 수혈도 꾸준히 받아와서 계속 CAPEX 투자는 하는데 돈을 벌진 못했단 것입니다.

2차전지 사업은 탁월한 기술력보다는 물량으로 승부를 보는 산업에 가깝습니다. 원재료 사와서 최대한 많이 만들어 팔아야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CATL 등 중국업체들이 2차전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입니다. 물량공세하면 역시 중국이죠.

▶아무튼 SK온도 막대한 자금을 끌어와서 꾸준히 투자를 합니다. 하지만 관건은 언제나 그렇듯 '경쟁'입니다. 내가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해서 원재료 가져와 물량 쏟아낸다고 해도, 경쟁사가 더 많이 공장 짓고 설비투자해서 더 많이 생산해 시장점유율을 가져가면 소용이 없어집니다.

경쟁사에 비해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은 SK온 입장에선 더 큰 공장, 더 많은 기계설비 투자가 더 빠르게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차입으로 조달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금리도 치솟았으니 비용이 계속 불어나기도 했죠.

부채를 보면 2021년 6조8000억원에서 2022년 15조3000억원으로 8조원이 넘는 돈을 한꺼번에 빌려왔습니다. 하지만 2022년말 대비 2023년 3분기까지 차입 증가 규모는 5조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차입 증가 속도는 떨어진 것이죠. 슬슬 차입만으론 부족하단 시그널로 볼 수 있습니다.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도 유상증자를 하는 상황입니다.

때문에 선택한 게 프리IPO 같은 방법이지만,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데 뭐니뭐니해도 진정한 IPO만한 게 없습니다. 결국 SK온은 목표했던 IPO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안 할 이유도 없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에 봉착합니다. 2차전지에 대한 분위기가 참 많이 달라졌단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당장 오늘 SK온이 IPO를 한다면 LG에너지솔루션만큼의 열광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SK온 입장에선 참 억울할 노릇입니다. 타이밍이 조금 늦어진 것 치고는 치러야하는 대가가 너무 비쌉니다. 모쪼록 배터리 산업이 활성화돼 우리나라에 또 하나의 성장 기업이 상장되길 바랄 뿐입니다.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에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엔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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