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말고 정책]시늉만 하며 시간 끈 연금개혁…정부안 직접 제시하고 설득 의지 보여라

기자 2024. 1. 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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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연금개혁
국회에 논의 주도권 넘기는 것 자체가 진정성 있다고 보기 어려워
보험료율 인상 넘어 기초보장으로의 성격 변화 등 구조적 대안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

현 정부 출범 이후 2가지 연금개혁 논의가 있었다. 하나는 국회에 연금특위를 설치하고 그 밑에 전문가자문위를 통해서 논의하였고, 또 하나는 5년마다 하게 되어 있는 국민연금 재정재계산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실제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일반 시민들을 통한 공론화 등 추가 논의를 한다고 하지만 현 국회에서 유의미한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연금개혁이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이었다면 정권 초기에 이를 강력하게 추진했거나 아니면, 방향성이라도 확실히 제시했어야 한다.

여당이 소수당이기는 하지만 연금은 탈정치 이슈라는 점에서 여소야대만으로 그 이유를 탓할 수는 없다. 정부와 여당이 책임감과 결기를 가지고 연금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면, 야당이라고 해도 이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연금개혁의 주요 논의를 정부가 주도권을 잡으려 하지 않고 국회에 넘기는 것 자체가 연금개혁에 대해 진정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해외의 연금개혁 사례를 봐도 연금개혁은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새로운 사회계약을 제시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연금개혁 논의를 시늉만 했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다.

노후소득이 안정된 서구 국가들의 연금개혁은 재정안정화를 위해 공적 노후소득 보장은 다소 약화시킬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재정 문제와 노인빈곤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이다. 이 문제는 결코 보험료를 얼마 더 내고 급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라는 1차 방정식이 아니라 여러 사회문제와 얽혀 있는 고차 방정식이다.

연금개혁은 과거부터 누적된 여러 사회경제적 상황의 결과이면서도 또한 미래 우리 사회의 여러 예상까지도 반영되어 다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초저출생의 문제가 공적연금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는데, 1970년대 연 100만명이 태어나던 사회가 현재는 연 20만명대로 태어나는 사회로 변한 것까지 연금개혁은 반영해야 한다. 현재 경제활동인구 3500만명, 노인인구 950만명인 사회가, 25년 뒤 경제활동인구 2300만명, 노인인구 1900만명인 사회로 변한다는 통계청 추계에 기초하고 개혁을 다루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노동인력 확보를 위한 획기적인 정년연장이나 이민정책이 세워지는지에 따라 연금개혁의 내용은 엄청나게 달라지게 된다.

어려운 문제는 어렵게 접근해야 하고,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 인구 문제와 노동시장 상황에 대한 불안정성이 큰 상황에서 초장기 재정추계에 의존해서는 해답은 나올 수 없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국민연금 재정 문제는 수리적으로는 보험료를 현재 9%에서 15% 내지 18%로 높이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선거를 위해 건강보험료 지역가입자 재산 부담 경감 같은 감세정책을 펴는 정부에 이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국민연금 재정 문제를 보험료율 인상뿐 아니라 부과소득 범위 확대나 조세 투입, 기초보장으로의 성격 변화 등 구조적인 대안들을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연금개혁 논의는 그 정책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논의 수준은 지극히 편협했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다. 다수의 상용직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퇴직연금의 성격이 무엇인지, 한국 연금개혁 논의에 포함시킬지 말지라는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조차도 합의되지 않은 채 연금개혁이 다루어져 왔다. 연금 관련 부처가 다양하게 분산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종합적인 연금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는 한 부처가 아니라 정부의 책임 있는 사람이 주도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을 막론하고 연금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이를 리스크로 접근하고 있는데 이번 논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총선에서 연금개혁이 주요 이슈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정부는 최선을 다했지만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면피하려 할지 모르겠다. 개혁 내용에 있어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2007년 국민연금 개혁이나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은 그래도 정부가 결기를 가지고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성공시켰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연금개혁 논의는 그 주제의 중요성에 턱없이 부족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에 현시점에서 모든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 연금개혁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과거 일본의 연금개혁처럼 연금개혁 시점을 특정하고 외부 단체가 아니라 정부가 직접 안을 제시한 후 국민들을 설득하겠다는 의지라도 현 정부에서 보여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연금개혁이라는 어젠다를 정치적으로 활용만 하고, 실행에 있어서는 시늉만 하다가 총선까지 왔다는 지금까지의 평가를 바꿀 수 없다.

정창률 단국대 교수·경실련 사회복지위원장

정창률 단국대 교수·경실련 사회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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