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기본으로 돌아가자
경제학의 기본 명제는 이기적 개인들의 이기적 행위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 파격적인 명제는 몇 가지 중요한 전제를 가정할 때 성립된다. 그러나 이 전제에 대한 몰이해가 많은 오해를 야기해 맹목적 자유주의자나 반시장주의자를 낳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몰이해로 이기적 개인의 이기적 행위는 항상 보호되거나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기적 개인으로서 기업이나 사업자의 이윤 추구라는 이기적 행위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이기적 행위를 위한 수단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제한을 없애는 것이 경제적 자유를 증진해 사회에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학원론을 주의 있게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기업이 이윤을 추구할 때 특정한 수단만을 사용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만약 이를 놓친 사람이라면,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경제학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 모형을 도구로 사용하는 기능인에 불과하다. 경제학 교과서는 기업이 오직 경영혁신이나 기술혁신을 통해 가격이나 수량 경쟁 또는 투자나 R&D 경쟁에서 이윤을 추구함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하자면, 혁신이라는 메리트(merits)에 기초해서만 이기심을 충족하도록 욕구를 유인해야, 즉 욕망이라는 마차에 마구(harness)를 제대로 씌워야 이기심이라는 에너지의 분출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만약 이런 마구가 벗겨져 있다면, 분출된 이기적 행위는 오히려 사회적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반시장경제적 ‘마구 벗기기’가 민주당 계열 정권도 예외 없이 역대 정부에서 기업하기 좋은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추진되어 왔다. 메리트 경쟁을 통해서만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은 기업인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보다 손쉽게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환경파괴의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고, 노동 착취와 하청사업자 착취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고,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고 카르텔을 형성해 기득권을 지키는 불공정 거래를 통해 쉽게 이윤을 담보할 수 있도록 경제 규제라는 마구를 벗겨달라는 희망사항을 정치권에 항상 내민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들은 거의 항상 일관되게 ‘반시장적 엉터리 자유주의자’ 관점을 유지해 왔다. 이들은 사실상 경제적 기득권의 보호와 확대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정치결사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 계열 정당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헷갈릴 뿐이다. 과거 정치 독재에 반대했다는 점 외에 이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정체성은 무엇인지 또는 있긴 한 것인지 의문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사회·경제 문제에 대한 진단과 제시하는 해법을 보면, 민주당은 기득권 보호를 전제로 약자에 대한 배려를 좀 더 하자는 입장인지 궁금하다.
이런 정치 집단들이 정치적 기득권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 획득을 위한 경쟁은 기본적 사회·경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혐오·매표·이미지 정치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쟁 외에 딱히 다를 것도 없는 정치세력들은 경제적 기득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정치 이슈를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로부터 멀리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누구를 더 싫어해서 특정 정당을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극단적 민주당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믿고, 극단적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이재명 대표를 악마화한다. 1월1일 새해 첫날 야당 대표의 목숨을 노린 정치테러가 발생했음에도, 혐오정치에 대한 반성보다는 이를 악용해 선거에 이용하려는 정략적 자세가 언론에 더 조명되고 있다.
그런데 각 정치세력의 얼굴이 바뀐다고 한국 정치가 바뀔 수 있을까? 둘 다 싫으면 이쪽으로 오라는 것 외에는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제3세력이 등장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제조업 위기, 기후위기, RE100 이행, 저출산, 양극화, 노인빈곤, 자영업 몰락, 지방 소멸 등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산적한 문제가 정치·선거 이슈가 되어야 한다. 이제 공은 민주당에 넘어가 있다. 민주당은 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본 철학을 분명히 하고, 한국 사회와 경제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할지 구체적 해법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정책 경쟁이 생기고, 국민이 제대로 선택할 수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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