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정말 원전 생태계 생각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원전을 포기하면 반도체 산업 같은 첨단산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팩트체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선 경기도의 반도체 클러스터는 새로 발표된 것도 아니고 삼성전자 측에서도 고민은 신규 원전보다는 전력 공급망 확보에 있다. 다음으로, 앞으로 애플 등과 계속 거래해야 하는 삼성으로서는 RE100 달성이 중요한데 한국 정부가 아무리 CF100(원전을 포함하는 무탄소 연료) 캠페인을 벌여도 원전은 그 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윤 대통령은 반도체 파운드리는 출력이 고른 고품질의 안정적 전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원전은 주파수 추종 운전(기동적 출력 조절)을 하기 어려운 경직성 전원이어서 거기에 적합하지도 않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해 경기도 내에 소형모듈원전(SMR)을 건설하는 안도 업계에서 잠시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실적 방안으로 논의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신규 원전이 있어야 한국 반도체 산업이 산다는 주장은 일종의 탈원전 괴담과 가짜뉴스 사이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의 진위와 별개로, 여기서 한국 원전 산업의 어떤 절박함도 읽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부터 탈원전 폐기와 원전 산업 생태계 복원을 정부의 성패를 가름할 핵심 정체성 중 하나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제 원전 생태계 복원은 대통령의 괴담 주장까지 필요한 지경인 것이다. 한국의 원전 산업이 끊임없이 손이 가야 하는 온실 속 화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비싸다고 여겨졌던 재생에너지가 세계 시장에서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 모두에 대해 경제적 우위를 점하게 된 징후는 뚜렷하다. 태양광과 풍력 설비 용량은 2022년에 전년 대비 20% 증가한 1228GW에 달했는데, 이는 2012년 대비 11배, 2006년 대비 176배 많은 양이다. 그동안 세계 원전의 설비 용량은 제자리걸음이었고 발전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는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만도 아니고 각국 정부가 원전 산업을 탄압해서도 아니다. 세계 에너지 산업의 생태계가 그렇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22개국이 2050년까지 원전 3배 확대 서약을 발표했지만, 그 내용은 기존의 원전 발전량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 호소에 불과하다. 세계 원전 산업은 규제 완화를 위해 로비에 열을 올리고 한국의 원전 산업은 곧 발표될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 신규 원전이 포함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온실 속 화초들이 정부들에 계속 유리와 물과 비료를 공급해달라고 아우성인 것이다.
그러나 본디 생태계는 열린 체계이다. 바깥의 환경과 다른 존재들의 변화에 따라서 천이하고 격변하는 것이 생태계의 원리이다. 각국 정부들의 방관과 방해 속에서도 태양광과 풍력에너지는 민들레와 토끼풀같이 이제 꿋꿋하게 우점종이 되었다.
한국 원전 산업만 갈라파고스화된 경제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정말로 원전 산업을 생태계로 생각한다면 더 큰 에너지 생태계를 살펴보면서 원전 산업의 질서 있는 퇴출을 포함하는 미래를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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