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과 조건만남 한 어른들…살인죄 버금가는 처벌 가능할까

징역 10∼20년 구형량에 법원 "이례적"…적정 처벌 수위 고민 빠져
"1심 집유·벌금형에 '면죄부', '국가가 2차 가해" 비판 목소리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미성년자들에게 조건만남을 제안하고 성관계를 맺은 어른들에게 검찰이 이례적으로 매우 무거운 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면서 법원이 고민에 빠졌다.

검찰이 일부 피고인에게는 살인사건에 준하는 징역형을 구형했으나 피고인들 모두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받으면서 사법부의 성 인지 감수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김형진 부장판사)는 18일 A씨 등 6명의 미성년자의제강간과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 사건 항소심 첫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원심의 형은 너무 가볍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피고인 중에서도 원심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피고인 3명 측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으나 검찰의 항소에 대응하는 차원"이라며 원심 형량을 유지해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항소심 들어 검찰과 피고인 측에서 새로 제출할 증거가 없고 원심의 증거조사 결과에도 이의가 없는 데다 첫 공판 진행에 앞서 양형 조사까지 이뤄지면서 이날 곧장 결심까지 진행될 수 있었으나 재판부는 한 차례 더 공판을 열기로 했다.

김 부장판사는 "항소 이유가 양형부당이지만 1심 구형이 높은 이례적인 사안에 속해서 사건을 충실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피해자 나이를 고려하고 보더라도 구형량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는 "아무리 조건만남이더라도 13세 미만의, 최소한 지켜줘야 할 선을, 초등생을 지켜주자는 것"이라며 "피해자 나이를 고려해 구형한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1심에서 '피고인들이 범행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물리적인 강제력을 행사하거나 피해자들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등 범행 경위에 다소나마 참작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강제력이 없었다는 점이나 형사공탁을 했다는 이유로 참작하면 국가가 2차 가해를 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며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할 의사를 확인한 뒤 참작해도 되는데 1심은 이를 소홀히 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날 공판에 앞서 아동·여성단체들은 법원 앞에서 회견을 열고 "사법부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매가 성착취 범죄임을 자각하고, 피해자의 용서 없는 형사공탁을 사유로 감형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 등은 성관계 동의 나이에 이르지 않은, 초등학생에 불과한 10대 2명을 상대로 1차례씩 강제추행 하거나 간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고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조건만남 대상을 물색한 끝에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 중에는 공무원도 1명 있었으며, 사건 이후 파면됐다.

1심에서 검찰은 피해 아동들이 겉보기에도 어린 데다 대화 내용 등으로 미루어보아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 A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법정 최고형에 가까운 징역 10∼15년을 구형했고,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만 적용된 1명에게는 가장 낮은 징역 3년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다른 피고인 4명에게도 징역 1∼2년에 집행유예 2∼3년을 선고했고, 가장 낮은 형량이 구형된 피고인 1명에게는 1천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다음 공판은 3월 20일 열린다.

conanys@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