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확대 1개월…경기도 의료계 ‘반발’ 극심 [로컬이슈]

김보람 기자 2024. 1. 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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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 연휴에는 몸이 아프면 누구나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설 민생 안정 대책’을 발표해 연휴 기간에 대면 진료 경험이 없는 곳에서도 비대면으로 진료를 받고 약 처방도 가능하게 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정부는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이후 지난해 6월부턴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 형태로 이어가며 대상 등을 점차 확대하는 중이다. 비대면 진료는 의료취약지역의 접근성을 높이는 등 장점이 있지만 약물 오·남용 등의 문제도 있어 찬반 논란이 뜨겁다. 비대면 진료와 관련한 경기도 의료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문제와 대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지난해 12월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 ‘비대면 진료’ 확대 1개월…수요 높은 경기도

정부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확대한 지 1개월여가 흘렀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15일 비대면 진료 허용 대상과 시간, 지역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시행했다.

앞서 지난해 6월 비대면 진료의 시범사업을 전격 시작할 당시, 그 대상은 만성질환자와 해당 의료기관에서 1회 이상 대면 진료한 경험이 있는 환자로 정했다. 그러나 6개월 뒤 발표한 이번 보완 방안에는 일반 질환자와 신규 환자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또 야간과 휴일에도 가능하게 해 비대면 진료의 문턱을 낮췄다.

비대면 진료는 도서 지역·비수도권 등 의료취약지역의 접근성을 높이고 고령자와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건강관리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가 환자·의료인·의료기관의 감염병 발생 위험을 낮추고 의료 인력 공급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처음 시작한 지난해 6월 총 14만373명의 환자가 비대면 진료 15만3천339건을 이용했다. 코로나19 확산 기간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비대면 진료(2020년 2월~2023년 5월) 이용 건수가 월평균 22만2천404건이었던 것과 비교했을 때 69% 수준이다.

복지부는 시범사업 기간에 초진 환자로 대상을 제한해 코로나19 확산 당시보다 이용 건수가 감소했던 것으로 분석, 수요가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경기도는 비대면 진료의 수요가 높다. 의료정책연구원의 연구자료에선 경기도의 비대면 진료 이용이 지난해 6월 3만4천56건으로 서울(3만7천509건)에 이어 전국 2위로 나타났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확대해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 다만 의료계 곳곳에선 안전성 등을 문제로 거센 반발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서울 도봉구의 한 의원에서 의료진이 비대면 진료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 “안전성 부족·약물 오남용·반쪽짜리 정책” 의료계 반발 극심

의사·약사들은 진료의 한계, 약물 오남용 문제 등을 들어 비대면 진료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현재 비대면으로 진료는 받을 수 있어도 약사법상 약은 환자 본인이나 대리인이 약국을 직접 방문해야 받을 수 있다. 소비자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들은 이 같은 시스템이 비대면 진료의 장점을 없앤 ‘반쪽짜리’라고 지적한다.

특히 비대면 진료 의사의 처방전 자체를 거부하는 약국도 있어 ‘약국 뺑뺑이’ 문제도 불거진다.

또 여드름약, 탈모약, 다이어트약 등은 비급여 전문의약품으로 중복 처방을 확인하기가 어려워 ‘약물 오남용’ 가능성이 지적되고,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없어 정확한 진료가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지난해 6월 의료정책연구원의 ‘비대면 진료에 관한 의사 인식 조사’를 보면 ‘비대면 진료 허용’에 관한 질문에 55.5%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24.6%였다. 비대면 진료를 반대하는 이유로는 ‘안전성·유효성 미검증으로 인한 오진 가능성’이 89.4%로 가장 높았다.

경기도의사회는 지난해 5월 비대면 진료가 국민 건강권을 위협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며 시범사업의 참여 거부를 선언했다.

강봉수 경기도의사회 총무부회장은 “환자의 증상을 확인하고 진단하기 위해선 시진, 청진, 촉진, 타진의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보지 않곤 정확한 진료가 어렵다. 어린아이들은 의사 표현이 미숙해 환자 특성을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 안전성 문제가 가장 크다”며 “특히 초진 환자를 정확한지 알 수 없는 카메라를 보고 진료하라는 것은 의료 쇼핑을 부추기는 행태”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도 비대면 진료는 보조수단일뿐, 간호사가 동석해 실제 모니터링이 가능한 상태에서 재진 환자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한다”며 “결국 국민의 건강권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진이 발생했을 때 법적 문제도 의사에게 떠넘길 것이다. 모든 문제를 떠나 의사로서 직업윤리상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비대면으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영달 경기도약사회장이 지난 2022년 7월1일 경기남부경찰청에 닥터나우를 약사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경기도약사회 제공

경기도약사회 역시 지난해 12월 성명서를 통해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확대는 플랫폼 배불리기에 불과하다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박영달 경기도약사회장은 “비대면 진료 민간 플랫폼에서 개인 정보가 담긴 처방전을 다량으로 갖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며 “병원과 약국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환자를 많이 받으려고 수수료를 지급하게 될 테고, 앱은 더 많은 수수료를 내는 약국에 처방전을 몰아주는 등 불법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시범사업이 확대된 뒤 예상 이용자를 조사했더니 600만명이었다. 그중 75%는 탈모·미용·다이어트 등의 약을 필요로 하는 비급여 환자로 나타났다”며 “비대면 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들로 볼 수 없고 의료인들이 감염 위험에 노출돼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가다간 약 배달 우려도 있는데, 약은 정확한 설명을 듣고 올바르게 복용해야 한다”며 “노약자의 경우 먹는 약이 많아 약끼리 충돌의 우려가 있고 인지능력도 떨어져 상세한 설명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미지투데이

■ 전문가 “비대면, 대면 진료 병행해 환자 건강 체크…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비대면 진료의 기회를 열어 주되 진료 주체인 의사를 비롯한 약사 등의 입장을 고려해 규제와 관리를 해나가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박은하 용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장애인의 경우 사회복지사가 있을 때만 병원에 갈 수 있기 때문에 비대면 진료는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대면 진료를 하도록 규제해 환자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체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 있는 의사, 약사의 우려에 크게 공감하기 때문에 의료진 등과의 논의를 거쳐 중장기적으로 비대면 진료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안정화하고 수정·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시점에서 큰 부작용이 없다면 비대면 진료를 열어주는 방향은 맞다고 본다”며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에 기회를 주는 대신 해외 사례처럼 간호사 등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하게 하는 보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방전은 공공 플랫폼으로 전송해 의료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대안도 있다. 국민 의견을 수렴하면서 사후적으로 규제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람 기자 kbr1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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