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주 앞세워 주가 뻥튀기…금감원, 주가조작 세력 대거 적발
인공지능(AI) 등 유망 사업을 추진 계획 허위로
주가조작꾼 등 무자본M&A세력 다수 얽혀 있어
#기계 제조업체인 A사는 코로나19가 확산할 때 관련 치료제 개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A사는 실제로 치료제를 개발할 기술력이 없었지만 주식시장에서 코로나19 테마주로 묶이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개인 투자자들도 A사의 전문성을 검증하지 않은 채 대박을 노리며 일단 주식을 사들였다. 이후 허위 공시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A사 주식은 거래가 정지됐다. 하지만 이미 A사는 자사 주식을 처분해 거액을 챙긴 뒤였다.
이차전지, 인공지능(AI) 등 유망 신사업을 추진하는 척 속여 주가를 끌어올린 상장기업들이 대거 적발됐다. 이들 상당수는 ‘주가조작꾼’ 등과 얽혀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이러한 ‘신규사업 가장 불공정거래’ 행위 7건을 적발해 엄정 조치하고, 현재 13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금감원의 조치를 받은 업체들은 평균 200억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겼다.
주식시장에서는 매년 유망 사업으로 각광받는 테마 주식에 대한 투자 열기가 뜨겁다.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2021년에는 마스크·진단키트·치료제 등의 사업이 유망 신사업으로 투자자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2022년부터는 이차전지·AI, 빅데이터 등 미래 과학 테마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사업을 추진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해당 사업에 진출할 것처럼 투자자를 속이는 불공정거래가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허위로 신규 사업에 진출한 회사 대다수는 기존에 영위하던 본업과 관련이 없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내세웠다. 신사업과 연계할 기술력이 없음에도 오직 주가 띄우기 용도로 시장에서 주목받는 신사업을 골라 투자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금감원 조사 대상이었던 20건 업체의 본업은 의료기기(5건)·기타 제조(4건)·기계(3건)·전기·전자(3건)·금속(2건)·기타(2건)였다. 하지만 이들이 추진하겠다고 한 신규사업은 이차전지(6건)·코로나 치료제(6건)·바이오(3건)·마스크(1건)·기타(4건)로 본업과 관련 없었다.
금감원은 이처럼 신규사업을 가장한 불공정거래에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이 관여한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무자본 M&A란 돈을 들이지 않고 100% 차입을 통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주가조작꾼’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는 세력들로 금감원이 조치를 완료한 사례 7건 중 3건에 이들이 연관돼 있었다. ‘주가조작꾼’ 등은 상장 기업을 일단 섭외한 후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이나 인수 직후에 허위 테마 사업 진출을 이용해 주가를 띄워 거액을 챙기는 수법을 썼다.
횡령·배임을 함께 저지른 일도 있었다. 금감원 조치 완료 7건 중 3건에서 횡령·배임 혐의가 확인됐다. 이 중 1건은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백억원대로 유상증자를 했지만 확보한 자본을 신규사업에 쓰지 않고 빼돌렸다. 신규사업 추진을 위한 허위 자금조달 계획을 발표한 후 시행을 계속 연기한 경우도 있었다. 사채 자금을 끌어와 대규모 자금조달에 성공한 것처럼 속인 뒤 사업과 무관한 용도로 자금을 유용한 사례도 문제가 됐다.
조사대상 20건 중 대부분에 코스닥 상장사가 연루돼 있었다. 조사대상 가운데 10건이 상장폐지를 앞두고 있거나 거래 정지된 상태였다.
금감원은 “투자의사 결정 때 (각 기업의) 정기보고서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며 투자자들에게 유의를 당부했다. 정기보고서에서는 조달자금의 사용내역, 신규사업의 세부 추진현황, 미추진 사유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유명 인사 등 사외이사 등으로 영입해 눈속임하는 홍보 수법도 주의해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규 사업 관련 전문가나 유명 인사가 경영진에 선임됐다고 해서 해당 사업이 반드시 추진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신규사업과 관련해 연구기관과 업무협약(MOU)을 맺었다며 과장 홍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법적 이행 의무가 없는 MOU 체결은 신규사업 진출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금감원의 당부다.
신규사업 진출 목적의 법인투자(인수 등)가 일어났다면 해당 사업체의 실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름만 신규사업과 관련 있는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를 앞세운 수법이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업 주제별로 중점 조사국을 지정해 집중 조사하는 한편 외국 금융당국, 관세청 등과 협조를 통해 신규사업의 실체를 끝까지 추적 조사하겠다"며 "시장의 신뢰를 훼손시키는 주가조작 세력을 엄정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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