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극장→넷플 간격 늘린다…한국영화 6개월 지나야 OTT 공개 가능
문체부 펀드 지원작품 우선 도입
‘서울의 봄’ 같은 상업영화 대상
추후 한국영화 전체로 확대할 듯
18일 영화계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달 업계와 협약식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식 홀드백 규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홀드백 의무화 제도의 핵심이자 그동안 갑론을박이 이어졌던 작품의 OTT 공개 유예 기간은 극장 개봉 후 6개월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문체부 관계자는 “영화 제작사, 투자·배급사, 극장 등 업계 관계자들과 아직 협의를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규정의 세부 내용에 대한 합의를 거쳐 다음달 최종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발표되는 홀드백 규정은 월정액제 구독형 OTT에서 추가 비용 없이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상품(SVOD)에 도입된다. IPTV 등에서 건당 요금을 내고 보는 개별구매 상품(TVOD)은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이다. 소비자가 최신 영화를 사실상 무료로 감상하는 경우만 일단 막겠다는 것이다. 또 관객 10만명 미만, 제작비 30억원 미만 등 소규모 작품에 대해서는 예외 규정을 둘 예정이다.
홀드백 규정이 당장 적용되는 건 정부 지원 작품들이다. 정부 모태펀드를 통해 벤처캐피탈(VC) 투자를 받는 일반 상업영화가 대상이다. 문체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적으로 개봉한 한국영화 210편 가운데 문체부 콘텐츠 펀드의 투자를 받은 작품은 총 62편(약 29.5%)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범죄도시3’와 ‘서울의 봄’도 포함된다. 지난해 10만 관객을 넘어선 일반 한국영화 37편 중 OTT에 공개된 작품이 24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 지원작의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런 가운데 문체부가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조7400억원의 정책금융을 마련하는 만큼 정부 지원작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업계의 홀드백 준수 문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목표다. 관건은 업계 합의안 도출이다. 예를 들어 배급사가 홀드백 준수 시 극장에서 상영 기간을 늘려 주거나, OTT사가 직접 투자·제작한 한국 영화는 홀드백 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등의 세부 규정이 필요하다.
다만 정부 지원금 비중이 낮은 대작들은 홀드백 의무가 부과되는 정부 펀드의 투자를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넷플릭스 같은 OTT사에 작품을 빨리 넘기면 순 제작비의 약 110~120%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향후 홀드백 규정의 대상을 한국영화 전체로 확대하고, 이를 통한 자율 규제가 불가능할 경우 법제화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인 건 OTT 직행으로 한국 영화산업이 코로나19 국면이 종료된 이후에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흥행작으로 활력을 되찾은 듯 보이지만 가장 큰 수익원인 극장 매출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시기에 못미친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영화의 극장 매출은 총 5984억원으로 2019년(9708억원)의 약 61%에 불과했다. 한국영화의 스크린 점유율도 하락 추세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뉴 노멀’이 되면서 소비자들에게 ‘한국영화는 한두 달만 기다리면 OTT에 뜬다’는 인식이 점점 고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화가 완전히 굳어지면 홀드백 극장 상영과 OTT 스트리밍 계약 사이에서 제작사와 투자·배급사들이 부차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IPTV 등의 개별구매 TVOD 서비스도 유명무실화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한국영화를 살릴 길은 더욱 요원해진다는 게 영화계 전반의 우려다.
이와 관련해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한국영화가 개봉한 뒤 OTT에 공개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드라마틱하게 단축됐다. 이전에는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약 6~12개월의 간격을 뒀었는데, 이런 암묵적 합의가 완전히 붕괴돼 한국 영화산업 전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영화 산업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홀드백을 법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홀드백 준수 의무를 법제화하더라도 모든 영화에 대해 일괄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실정이다. 극장가에서 예상 외로 큰 흥행을 거두지 못한 작품들의 경우, 홀드백 기간이 길면 길수록 OTT에 넘기기도 어려워져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오리지널 시리즈나 투자를 통해 한국 영화를 제작해온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사들의 지속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예외 규정을 둘 수 밖에 없다. 이는 제작비 규모가 작은 독립·예술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OTT사들은 정부의 홀드백 제도 도입과 관련해 대부분 말을 아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현재 극장 개봉 영화의 스트리밍 공개 시점은 작품 계약마다 상이하다”며 “홀드백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말씀 드리기 어렵다”고 전했다. 웨이브 관계자는 “자사의 경우 홀드백 문제와 무관하게 전략적으로 예능·드라마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티빙 역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투자·배급사들도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배급사라고 해서 최대한의 마진을 위해 무조건 OTT로 작품을 빨리 넘겨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여전히 매출 규모나 파급 효과가 가장 큰 극장에서의 작품 상영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면서도 “다만 작품별로 사정이 조금씩 다른 부분은 고려가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문체부는 지난해 9월 영화진흥위와 영화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IPTV 업계 등 관계자들로 이뤄진 ‘한국 영화 산업 위기 극복 정책 협의회’를 발족하고 활동을 이어왔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말에는 이번 홀드백 규정을 마련하기에 앞서 미개봉 영화를 지원하는 ‘한국 영화 개봉 펀드’의 투자 작품에 극장 개봉 후 4개월의 OTT 홀드백 준수 의무 조건을 시범 적용했다. 이번 홀드백 규정과 관련한 업계 합의도 해당 협의회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홀드백 의무화가 한국 영화산업 회복의 근본 대책이 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배우로 활동하는 박근수 인천대 공연예술학과 교수는 “홀드백을 제도화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극장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홀드백은 최소한의 장치로 두고 콘텐츠의 다양성과 질을 높일 수 있는 각종 지원을 확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망 사용료에서 일정 비율을 떼는 식으로 OTT사들도 영화발전기금을 내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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