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비관하는 동심이 어때서…‘올해의 좋은 동시’가 전하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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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동시 2023'(상상)이 출간되었다.
시인 넷과 평론가 한 명이 해마다 1년치 신작 동시 가운데 추려 묶고 있다.
합계 출산율 0.7명, "한국 소멸하나"(뉴욕타임스 칼럼) 따위 질문은 '어린이 마음'의 소멸로도 닿는다.
아름답고 안온한 세계 바깥으로부터 진실이 선명해지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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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동시 2023’(상상)이 출간되었다. 시인 넷과 평론가 한 명이 해마다 1년치 신작 동시 가운데 추려 묶고 있다. 합계 출산율 0.7명, “한국 소멸하나”(뉴욕타임스 칼럼) 따위 질문은 ‘어린이 마음’의 소멸로도 닿는다. 다음 시에 오래 머문 이유다. 낙관과 비관 사이 두 갈래로 읽히는데, 비관 쪽을 택하기로 했다.
“다 익기도 전에 떨어져 버린 토마토는 우리를 슬프게 해요// “왜 잘못 없는 사람들이 다치고 아프고 죽는 거예요?”// TV를 꺼 버린 어른들은 말이 없었고// 사람들이 아직 울고 있는데 아침이 와요// 어른들은 다정하게 말해요, “밥을 먹자.”// 사람들이 아직 울고 있는데 밥을 먹어도 되나요?// 사람들이 아직 울고 있는데 밥을 먹어요/ 걱정 없는 얼굴로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불러요// 밥을 잘 먹고/ 밥을 잘 먹고 밥을 잘 먹고/ 슬프고 미안한 마음이 구름처럼 흘러가면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대요// 남아 있는 토마토는 반짝반짝 빛나고 빨갛게 익어 가고 동그란 토마토가 또 열리고”(‘밥을 먹어요’, 조인정)
비관하는 동심일 때 들린다, 무력하게 길들여지는 듯한 아이의 목소리, 질문이 사라지는 소리. 낙관은 때로 말문을 막는다.
“마을을 나와/ 들로 난 길을 걷네// 누렁소 있네/ 살금살금 지나가네// 아줌마 오네/ 비껴가네// 굽이진 곳 풀숲에 멈춰/ 바람이 살랑거리는 대로/ 서로 살며시 몸을 대는데// 버럭 욕하는 소리/ 다짜고짜 막대기를 휘두르는 사람// ―도망갈까?/ ―아냐// ―짖을까?/ ―그래 짖자”(‘개 둘’, 성명진)
이 세계는 어떤가. “짖자”는 미래를 향한 의지이면서도, 그게 고작인 존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게다가 그러고선 정적이다.
이 밖에도 섭섭한 마음(‘걱정이다’, 장동이), 작별하는 마음(‘씨감자’, 신솔원), 그래서 궁금해하는 마음(‘씨앗’, 방주현)이 시집엔 가득하다. 전체 57편에, 지난해엔 볼 수 없었던 25명 시인의 시가 포함됐다. ‘대설주의보’로 잘 알려진 최승호 시인도 그중 있다.
올해 선별된 시 가운데 특히 부각되는 생명체는 뱀이다. 사시사철 자연 생태계를 대변하는 이(‘무지무지 긴 뱀의 겨울잠’, 문신)로부터 인간-비인간, 미-추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꼬마 뱀을 조심해’, 이만교), 미래에서 오는 손님(‘로봇 뱀’, 권기덕)으로까지 ‘더불어’의 세계를 미물의 시선에서 포착한다.
아름답고 안온한 세계 바깥으로부터 진실이 선명해지는 셈. 하여 ‘밥을 먹어요’를 다시 읽어보면, 비로소 ‘사과의 생일’(“…// 엄마는 동생을 낳고/ 햇빛은 사과를 낳고/ 사과는 빨강을 낳고//…, 최휘)처럼 토마토의 생애 또한 신비해진다.
선정위원(권영상·김제곤·안도현·유강희·이안)은 18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사회의 비대칭적인 관계와 차별은 오랜 시간 존속되며 우리에게 익숙해지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힘없는 것들이 다수에 의해 소외받는 현장을 포착한 작품들이 더욱 눈에 띈다”고 밝혔다. 권영상 시인은 “(이번 시어들을) 빈도수가 많은 순서로 배열하면 생태계, 배려, 공감, 나눔, 약자와 강자, 화해, 불평등, 고독, 빈부격차, 경쟁 등”이라고 해설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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