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다시 깨닫는 '노볼 메소드'의 위력

방민준 2024. 1. 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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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멤버 김주형 프로. 사진은 그린 공략을 앞두고 가볍게 빈 스윙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40여년 전 골프에 한창 매료되었을 때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다. 지독한 골프광인 장인이 라운드하고 집에 들어설 때 장모와 나누는 대화 내용에 골프의 수수께끼가 담겨있다.



 



"오늘 잘 치셨지요?"
"그럼, 잘 쳤지. 그런데 여보, 이제야 골프가 뭔지 알 것 같아!"
"언제부터 그 얘기 하신지 알아요?"
"요즘 아니던가?"
"벌써 십수 년은 되었을걸요?"
"허, 그런가. 어쨌든 골프가 뭔지 이제 겨우 깨달아지는 것 같아."
"그 참, 골프란 운동이 별나기도 하네요. 당신처럼 머리 좋은 사람을 계속 깨닫게 하다니!"



 



이번 겨울 '노 볼 메소드(No ball method)'를 익히며 전과 다른 차원의 희열을 맛보고 있다. 새로울 것도 없고 내가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미국의 레슨프로들이 강조하는 노 볼 메소드란 빈 스윙하듯 클럽을 휘두르라는 가르침이다. 공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윙하라는 것이다. 새롭거나 특별할 것도 없다. 골프를 시작한 지 1~2년쯤 되면 주변의 고수나 레슨서, 혹은 골프 채널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초보 단계만 벗어나면 공에서 물러나 클럽을 휘두르는 빈 스윙을 못 하는 사람은 없다. 백스윙에서부터 팔로우 스윙까지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양발 앞에 공이 놓이기만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백스윙은 올라가다 말고 팔로우 스윙도 중도에 흐지부지되고 만다. 빈 스윙 때 유지되던 균형은 무너지고 몸의 움직임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경직된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일찌감치 골프란 히팅(hitting)이 아니라 스윙(swing)의 운동이란 것을 간파하고 동네 레슨프로들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임팩트(impact) 다운블로(down blow) 헤드스피드(head speed) 등에 집착하지 않고 부드러운 스윙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볼을 때려 보내려는 스윙을 떨쳐내지 못했다. 단신인 데다 근력도 시원치 않아 부드러운 스윙만으로는 버텨내기가 쉽지 않아 가격하는 스윙을 적당히 수용해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난 30여 년간 70대 타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 70대는 고사하고 80대 초반 타수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해왔다. 나이와 함께 비거리와 근력이 줄어 골프깨나 친다는 40~50대 동반자들과 라운드하면 티샷은 30~40m 차이 나 파온이 쉽지 않아 남들보다 두세 클럽 길게 잡아 파온을 시도하고 파온에 실패하면 어프로치로 버텨내는 상황이다.



 



'궁즉통(窮卽通)'이라고 했던가. 어떻게 장강(長江)의 뒷물결에 밀리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없을까를 궁리하다 찾아낸 열쇠가 바로 '기본으로의 회귀'였다.



 



내가 회귀해야 할 기본은 다름 아닌 '부드러운 스윙'이었고 부드러운 스윙을 위해선 '노 볼 메소드'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체화(體化)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스윙에 도움이 되는 나만의 이미지를 총동원했다.



 



일필휘지로 한일자를 쓰듯, 고속열차가 간이역을 그냥 통과하듯, 시위를 떠난 화살이 목표를 향해 날아가듯, 대나무숲에 바람이 머물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듯, 인파 속을 지나갈 때 소매가 스치고 어깨가 부딪히지만 머물지 않고 지나가듯, 스키점프 선수들이 아무런 힘을 쓰지 않고 활강대를 미끄러져 내려와 가벼운 반동으로 허공으로 날아오르듯. 



 



이런 이미지는 모두 스윙 순간 클럽헤드가 볼이 놓여 있는 지점 부근을 통과할 때 생길 수 있는 집착이나 미련을 최소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더 극단적으로는 볼과 임팩트 그리고 중간지점의 스윙을 삭제해버리는 이미지까지 동원했다. 



 



궁술을 예로 들어보자. 정확히 목표를 겨냥하고 흔들림 없는 자세로 시위를 당겼다 놓으면 시위를 떠난 화살은 중간의 궤도는 생각할 것도 없이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게 돼 있다. 화살이 날아가는 중간 궤도는 화를 쏘는 사람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궤도는 의지와 상관없는 유체역학이 만들어낼 뿐이다. 말하자면 골프의 스윙은 시위를 떠난 화살의 궤적과 다를 바 없다. 볼을 가격하려는 동작은 바로 시위를 떠난 화살이 중간에 궤적을 바꾸려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셰익스피어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 is well that ends well.)라고 했지만 골프에선 '시작과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 is well that starts and finish well.)가 불변의 진리다. 백스윙과 팔로우 스윙만 제대로 이뤄지면 스윙은 완성된다. 백스윙이 팔로우 스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만 하면 된다. 중간 과정은 화살의 궤적처럼 우리의 의지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임팩트니 다운 블로우니 하는데 지나치게 집착해 볼을 가격하려 들기 때문에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근육이 경직되고 만다. 볼을 강하게 쳐 내려는 동작은 몸의 중심축을 무너뜨리고 스윙 궤도를 찌그러뜨린다. 나무로 말하면 옹이가 생기고 뒤틀리는 것과 같다.



그 결과 스위트 스팟에 볼을 맞히지 못하고 스윙 자체도 완전한 팔로우에 이르지 못하고 중도에 흐지부지되고 만다. 파워는 줄고 방향성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공을 때리려는 순간 내 몸은 성능이 뛰어난 접착제로 만든 거미줄에 감겨 버리고 만다. 모든 미스샷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시작과 끝만 염두에 두는 스윙에서 볼은 단지 스윙 궤도 선상에 있다가 지나가는 클럽과 순간적으로 만날 뿐이다. 스윙 자체는 볼이 있으나 없으나 아무 상관 없다. 그냥 일필휘지로 지나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볼은 우연처럼 궤도 선상에 놓여 있다가 클럽페이스와 만나는 것뿐이다.



귀가 닳도록 듣는 '힘을 빼라' '때리지 말고 지나가라' '스윙 궤도로 쳐라'는 말은 모두 골프채를 볼에 집착시키지 말라는 뜻의 여러 가지 표현일 뿐이다.



 



'스윙의 시작과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믿음을 갖고 매트 위에 볼이 없다고 생각하며 노 볼 메소드 스윙에 도움이 되는 이미지를 총동원해 연습하며 비거리가 늘어나고 방향성이 눈에 띄게 좋아짐을 체험하는 즐거움으로 추위도 잊는다. 



 



골프의 비법이란 재생시켰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지워지기 마련이니 골프애호가라면 이 겨울에 머릿속 옛 골프 노트를 뒤적여 '노 볼 메소드'의 기본으로 돌아가기를 권한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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