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세상에 없던 신약이 미래를 바꾼다
연초부터 제약바이오 M&A·기술수출 러시
비만·심혈관·의료기기 분야 인수 관심 커져
대기업, 신수종사업 발굴 위해 잇따라 진출
시장 키우고 생태계 형성하는 선순환 기대
‘오직 신약만이 살길이다.’
대전 레고켐바이오로직스 본사에 걸려 있는 세계지도 바탕의 시계에 새겨진 글귀다. 레고켐바이오는 암을 잡는 유도탄으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 분야에서 국내 선두를 달리는 바이오 벤처다. 글로벌 제약사 얀센에 2022년과 2023년 잇따라 조(兆) 원 단위의 기술수출을 했다. 레고켐바이오 공동 창업자인 김용주 대표는 자칭 타칭 공히 ‘신약에 미친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는 LG화학에서 신약연구소장 등으로 23년간 근무하고 2006년 레고켐바이오를 창업해 현재까지 40년 동안 신약 개발이라는 한 우물만 판 인물이다. 신약 연구개발(R&D)에 매진하며 수많은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을 하다가 무산되기도 여러 차례, 결국 열세 차례 기술수출 성과를 내고 이번에는 신약 개발 임상 자금 마련을 위해 오리온에 최대주주 자리를 넘기는 결단을 했다.
새해 벽두부터 국내는 물론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인수합병(M&A)과 신약 기술수출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규모도 내용도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다.
보스턴사이언티픽이 의료기기 업체 액소닉스를 37억 달러(약 5조 원), 존슨앤드존슨이 표적 암 치료제 개발 업체 엠브렉스바이오파마를 20억 달러(약 2조 6000억 원)에 인수했다. 머크는 이중 항체 개발 기업 하푼테라퓨틱스를 6억 8000만 달러(약 9000억 원), 노바티스는 면역 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 칼립소바이오테크를 4억 2500만 달러(약 5600억 원)에 인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도 600개 기업 및 투자회사, 8000여 명의 관계자들이 모여 M&A 및 기술수출 논의를 활발하게 이어갔다. 논의가 진전되고 결실로 이어져 조만간 더 큰 규모의 ‘빅딜(Big Deal)’이 발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대형 제약·바이오 업체가 신약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술력이 뛰어난 바이오 벤처를 인수하고, 바이오 벤처는 기술수출로 자금을 수혈해 조 원 단위 비용이 들어가는 임상 자금을 마련하는 모양새다.
올해는 글로벌 M&A가 예년보다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특히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빅딜을 예상하는 의견이 많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제약·바이오 분야 인수합병(M&A) 규모가 올해 2750억 달러(약 356조 원) 규모로 지난해보다 23%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약사들의 관심 분야는 비만·심혈관·인공지능(AI)·의료기기 등이다.
최근 활발한 M&A와 기술수출은 자금력 있는 대형 업체와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 여력이 없는 바이오 벤처의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들은 “신약 개발은 돈만 까먹는다”며 반기지 않았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대기업들도 신수종 사업으로 바이오를 적극 키우고 있다. 삼성과 SK를 필두로 LG·롯데·CJ·코오롱에 이어 범현대가(家)·오리온까지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고 먹을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약 개발은 여전히 생존 게임이다. 수많은 제약·바이오 업체가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계열 내 최초)’ 신약 개발을 위해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래도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최근 다수의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가 해외로 진출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지만 아직 글로벌 점유율은 2%에 불과하다. 신약을 위한 R&D 비용도 글로벌 빅파마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격차가 크다. 이런 측면에서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이 제약·바이오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 형성을 위해서도 긍정적이다.
바이오 벤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더욱 고도화하고 대기업은 보다 과감한 M&A 전략으로 덩치를 키워 빅파마에 도전해야 한다. 신약 개발은 멀고도 험난하다. 최소 10년이 넘는 임상과 조 원 단위의 막대한 R&D 비용,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예측 불가한 상황 등 난제가 넘치지만 미래를 위해 꼭 도전해야 하는 분야다. K바이오가 M&A와 기술수출을 통해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기를 바란다. 세상에 없던 신약이 미래를 바꾼다.
김정곤 기자 mckid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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