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이란에 미사일 공격…남아시아까지 번지는 중동의 전운

손우성 기자 2024. 1. 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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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이란 내 테러리스트 은신처 타격”
이틀 전 이란의 파키스탄 공습 보복 차원
이스라엘·하마스 전선 남아시아로 확장 가능성
홍해서도 미국·후티 반군 충돌 이어져
한 파키스탄 시민이 18일(현지시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란의 파키스탄 본토 미사일 공격 관련 기사가 실린 신문을 읽고 있다. AP연합뉴스

파키스탄군이 18일(현지시간) 이란 남동부에 반파키스탄 단체를 겨냥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파키스탄에 있는 반이란 무장단체 근거지를 폭격한 지 이틀 만에 나선 보복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중동의 해묵은 갈등이 폭발하는 가운데 전운의 불길이 시리아와 이라크, 레바논과 홍해를 넘어 남아시아까지 번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례적으로 군 동원해 상대 영토 타격

파키스탄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파키스탄군이 이란 시스탄-발루치스탄주의 테러리스트 은신처를 정밀 타격했다”며, 이번 공격이 이란에서 활동하는 반파키스탄 단체를 제거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공격받은 단체는 ‘발루치스탄 해방군’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최근 몇 년 동안 이란에서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장소들이 자신을 ‘사르마차르’라고 부르는 파키스탄 출신 테러 집단 은신처로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를 이란 측과 공유해왔다”면서 “이번 공격으로 많은 테러리스트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의 이번 공격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파키스탄 본토 공습에 대한 응징으로 보인다. 앞서 혁명수비대는 지난 16일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에 있는 반이란 무장단체 ‘자이시 알아들’ 기지를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등으로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란은 반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 외교부는 곧바로 수도 테헤란 주재 파키스탄 대사대리를 초치해 항의했다. 이란 IRNA통신 등은 시스탄-발루치스탄주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파키스탄 공격으로 최소 3명의 여성과 4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총 9명이 사망했다”며 “이들 모두 이란 국적자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시아파 맹주 이란과 수니파가 절대다수인 파키스탄은 종파 차이에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1947년 파키스탄이 인도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당시 이를 가장 먼저 지지한 국가가 바로 이란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국에서 활동하는 무장단체 처리 문제로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2019년 4월 자이시 알아들이 이란 남동부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켜 혁명수비대원 27명이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갈등에도 이란과 파키스탄은 지금까지 군이 직접 상대 영토를 타격하는 행위는 자제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공방의 무게감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 본토가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은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36년 만에 처음이다. 영국 가디언은 “주권 영토 내에서 이렇게 가혹한 공습이 펼쳐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란과 파키스탄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우려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달 이란이 핵무기 개발 가능성이 있는 고농축 우라늄 생산량을 다시 늘렸다는 보고서를 공개했고, 파키스탄은 인도·이스라엘·북한과 함께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간주되고 있다.

이란의 도발 의도는?

이란이 파키스탄 본토를 이례적으로 선제공격한 의도를 두고 이스라엘과 미국 주도의 전선을 흐트러뜨리려는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발리 나스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가디언에 “이란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 속도와 향후 일정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며 “새로운 전선을 만들어 이스라엘과 미국이 중동에서 만들고자 하는 질서를 흐트러뜨리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사실상 전선이 남아시아까지 확대됐다는 의미다.

반면 이란의 잇따른 도발이 불붙은 국내 민심을 달래기 위한 행보라는 시각도 나온다. 실제로 이슬람국가(IS)의 순교자 묘역 테러 이후 이란 일각선 정부의 안보 무능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정부가 외부의 위협에 수동적으로 맞서지 않겠다는 신호를 강경 지지자들에게 보내려는 것”이라며 “이란의 무력 과시는 국내 보수파들과 외국의 군사 동맹을 안심시키고, 이스라엘과 미국에 경고를 날리는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이란과 파키스탄의 교전도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활동하는 군사 전문가 시에드 무하마드 알리는 NYT 인터뷰에서 “정당하지 않은 이란 공격에 파키스탄은 시의적절한 대응이 필요했다”면서도 “이란과 파키스탄이 더 큰 도발을 할 동기는 전혀 없다. 양측 모두 얻을 것이 전혀 없다”고 진단했다. 파키스탄이 “이란의 주권과 영토 통합을 전적으로 존중한다” 등의 메시지를 내놓은 것도 이란과의 전면전은 피하겠다는 파키스탄의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파키스탄 경찰관이 18일(현지시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파키스탄 외교부 건물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미노처럼 번져가는 중동의 불씨

그러나 이란과 파키스탄의 의중이 무엇이든 간에, 이번 사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시작된 중동 분쟁의 불씨가 도미노처럼 번져가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역내의 오래된 갈등에 도화선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과 미국에 반발한 레바논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개입으로 이미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지대는 교전지역이 됐고, 불안해진 정세를 틈타 다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준동으로 미군의 공습 지역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와 시리아, 예멘으로까지 확대됐다.

이런 와중에 패퇴한 줄 알았던 이슬람국가(IS)까지 재등장했다. 이란이 시리아, 이라크 에르빌에 이어 파키스탄 본토까지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한 것은 애초 지난 3일 이란 케르만시 순교자 묘역에서 발생한 이슬람국가(IS) 폭탄 테러의 여파였다.

홍해의 긴장도 계속 고조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중부사령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후티 반군 미사일 14기를 대상으로 폭격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미군의 네 번째 예멘 본토 타격이다. 나아가 미국 정부는 이날 후티 반군을 ‘특별지정 국제테러리스트(SDGT)’로 지정하며 미국 내 후티 반군 모든 자산을 동결했다.

후티 반군은 홍해 초입인 아덴만에서 미국 선박 ‘젠코 피카르디’를 공격하며 맞불을 놨다. 야히야 사리 후티 반군 대변인은 “미국과 영국 공격에 대한 대응은 필연적이다”라며 “어떠한 새로운 공격도 처벌 없이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불안정 상황이 확대되면 누군가의 작은 오판이나 실수만으로 통제 불가능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 중동 전문가 유스트 힐터만은 최근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중동 내 다양한 행위자들이 매우 위험한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다”며 “단순한 계산 착오와 잘못된 의사소통, 우발적인 공격이 언제든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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