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 인구에도 제조인력 부족...시진핑 선택은 ‘로봇 인해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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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대국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의 공장’이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넘쳐나는 인구에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해외 기업들을 끌어모았다. 기업들은 중국으로 앞다퉈 생산 기지를 옮겼고, 아이들 장난감부터 최첨단 스마트폰 부품까지 ‘메이드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전 세계에 뿌려졌다.
그런데 14억 인구의 중국에서 최근 로봇이 사람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전 세계에 설치되는 산업용 로봇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설치될 정도로 ‘로봇 인해전술’이 펼쳐지고 있고, 제조업 자동화 수준을 평가하는 ‘로봇 밀도’(직원 1만명당 로봇 대수)도 로봇 대국으로 통하던 일본을 지난해 이미 넘어섰을 것이란 예상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시진핑 주석이 산업 현장에서 ‘생산성 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중국 산업 현장이 ‘노동 집약’에서 ‘로봇 집약’으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로봇 시장
중국의 산업용 로봇 설치 증가세는 폭발적이다. 최근 전 세계 산업용 로봇의 과반이 중국에 설치된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 중국에 총 29만258대의 산업용 로봇이 설치됐다. 이는 같은 해 전 세계에 설치된 산업용 로봇(55만3052대)의 약 52%에 이른다. 설치 대수를 기준으로 2위인 일본(5만413대)의 5.8배, 3위 미국(3만9576대)의 7.3배 수준에 이르는 수치다.
산업 현장마다 로봇 도입을 서두르면서 중국의 산업용 로봇 가동 대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기관인 아이리서치(iResearch)에 따르면, 중국의 산업용 로봇 대수는 2017년 50만대에서 2022년 136만대로 5년 만에 2.7배 수준이 됐다. 인민일보 등 현지 매체는 “현재 중국에서 가동 중인 산업용 로봇 대수는 150만대 이상으로, 전 세계 산업용 로봇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중국의 산업용 로봇 대수는 내년엔 200만대를 돌파해 208만대까지 늘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선 로봇 숫자만 많아지는 게 아니라 로봇의 질(質)도 좋아지고 있다. 과거 물건 운반과 같은 단순 작업에 주로 투입됐던 로봇들은 최근 배터리 부품 조립 등 높은 정확도를 요구하는 분야에도 활용되고 있다. 왕훙(王洪) 중국 공업정보화부 부국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산업용 로봇은 빠른 속도와 높은 정확도를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사용될 만큼 발전하고 있다”며 “특히 친환경 자동차, 리튬 배터리, 태양광과 같은 신흥 산업에서 로봇 활용이 늘고 있다”고 했다.
설치되는 로봇이 많아지며 중국의 로봇 시장 규모도 가파르게 오르는 추세다. 중국전자학회(CIE)에 따르면, 지난 2017년 64억달러에 불과했던 중국의 로봇 시장 규모는 2021년 142억달러를 기록했고, 오는 2024년에는 251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연평균 20% 넘게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2017~2024년 사이 전 세계 로봇 시장이 2.5배 커지는 동안 중국은 3.9배 성장할 정도로 성장세가 빠르다는 게 중국전자학회 분석이다.
◇선진국 뛰어넘는 ‘로봇 강국’이 목표
중국은 이미 세계 최다 산업용 로봇 보유국이지만, 로봇 대수를 넘어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로봇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는 게 목표다. 지난해 1월 중국 공업정보화부 등 17개 부처는 2025년까지 자국 내 ‘로봇 밀도’를 2020년의 2배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로봇+’ 계획을 발표했다. 로봇 업계는 직원 1만명당 로봇 대수를 뜻하는 로봇 밀도를 기준으로 국가별 제조업 자동화 수준을 평가하는데, 중국은 이 로봇 밀도를 2020년 1만명당 250대 수준에서 내년도에는 1만명당 500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목표를 세운 것이다.
중국 정부의 전격적인 지원에 힘입어 중국의 로봇 밀도 순위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중국의 로봇 밀도는 미국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중국이 2021년 한 해 동안에만 24만3300대의 산업용 로봇을 새롭게 투입하며 2021년 기준 로봇 밀도는 322대를 기록, 전년도 9위(246대)에서 5위로 네 계단 뛰어오른 것이다. 반면 로봇 밀도가 1만명당 274명에 그친 미국은 전년도 7위에서 9위로 밀려났다. 마리나 빌 국제로봇연맹 회장은 연맹 홈페이지에서 “중국이 로봇을 통한 자동화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로봇 밀도가 빠르게 올랐으며, 여전히 기회가 많다”고 밝혔다. 중국의 로봇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셈이다.
2022년도 중국의 로봇 밀도는 1만명당 392대까지 오르며 4위인 일본(397대)의 턱밑까지 쫓아왔고, 최근의 빠른 성장세를 감안하면 지난해엔 로봇 강국인 일본을 이미 추월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온다. 1위 한국(1012대), 2위 싱가포르(730대)와의 격차는 있지만, 중국의 전체 제조업 종사자 수가 3800만명(도시 기준)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로봇 성장세가 가파르다는 평가다.
◇중국이 ‘로봇 대전환’에 나서는 까닭
그렇다면 14억이나 되는 인구 대국 중국은 왜 산업용 로봇 확충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급격한 인구통계학적 도전에 직면하면서 ‘로봇 수퍼파워’가 되려는 사명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도 한국처럼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면서,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로봇을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국 국무원에 따르면, 중국의 생산 가능 인구는 2020년 9억8900만명에서 2023년 9억6300만명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노동 참여율(생산 가능 인구 중 경제 활동 인구의 비율)도 같은 기간 68.4%에서 65.2%로 쪼그라든다. 이 같은 노동력 감소는 이미 중국 노동시장에서 인건비 상승으로 반영되고 있다. 중국 동오증권은 “2012년부터 중국의 근로자 임금 증가율이 기업 소득 증가율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 중국의 20~59세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꺾이기 시작했다”며 “인구 고령화로 인건비가 증가해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현상이 불가피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할 사람이 귀해진 건 제조업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농부의 평균 연령은 50대에 이르고, 청년들은 농촌에 자리 잡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중국은 식량 안보에 집착하고 있고,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엔 관심이 없어 로봇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요양원에만 약 810만명의 노인이 있는데, 이들을 돌볼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처럼 다양한 업종의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하며, 중국에서는 로봇이 대안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는 청년들의 ‘탕핑(躺平) 문화’도 기업들이 로봇 도입을 서두르는 데 한몫하고 있다. ‘평평하게 눕는다’는 뜻의 탕핑은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구직과 같은 힘든 일은 포기하고 편하게 살려고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중국 청년들은 대학 졸업장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도시 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간 모습을 공유하며 탕핑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 청년들이 구직,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부모의 집에 얹혀살며 ‘전업 자녀’를 자처하는 현상을 주목하는 외신 보도들도 잇따르고 있다. 중국 청두에 사는 장모(23)씨는 최근 BBC 인터뷰에서 “올해 여름 졸업한 동기 32명 중 3분의 1 정도만 정규직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며 “엄밀히 말하면 일자리는 많지만 기대치를 낮추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눈높이에 맞는 직장을 못 찾은 청년들은 무기력에 빠지고, 산업 현장에선 당장 일할 사람이 부족해 로봇에 더욱 기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로봇 자국산 비율, 7년 만 두 배로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은 여전히 일본의 야스카와전기나 화낙, 스위스의 ABB 같은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 로봇 시장에서도 외국 브랜드 파워가 여전히 센 편이다. 중국 전청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일본 업체 화낙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5.3%를 기록하며 1위였다. 이어 일본의 야스카와전기와 스위스 ABB가 각각 점유율 8.2%씩을 기록했고, 중국 가전업체의 자회사가 된 독일의 쿠카도 7.9%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들은 세계 최대 로봇 시장인 중국에 공장을 세우고, 완성된 로봇을 중국 제조 업체들에 파는 식으로 중국 로봇 산업의 태동기부터 영향력을 키워왔다. 뒤늦게 로봇 산업에 뛰어든 중국 토종 업체 에스툰(5.9%)과 이노밴스(5.2%)는 각각 점유율 6, 7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중국의 산업용 로봇 자국산 비율이 빠르게 오르며 해외 기업들과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MIR에 따르면, 중국의 산업용 로봇 국산화 비율은 2015년 17.5%에서 2022년 35.7%로 7년 만에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중국 매체들은 2022년 에스툰의 매출액과 순이익 증가율은 각각 전년 대비 28.5%와 36.3%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중국 토종 제조사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중국 제조업의 기술 고도화 수요에 더해, 코로나 팬데믹 때 공급망 위기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로 외국 브랜드가 제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을 때 그 빈틈을 중국 로봇 제조사가 빠르게 메웠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다만 자동차 조립이나 고속·고정밀 작업에 쓰이는 ‘6축 로봇’(6개 관절을 가진 로봇) ‘스카라 로봇’(수평다관절 로봇) 등의 중국 국산화율은 각각 17%와 31%로 아직 낮은 편이다. 로봇이 들어올릴 수 있는 최대 무게(기반하중)를 올리면서도 움직임까지 자연스러운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 기술력은 아직 글로벌 기업들과 중국 기업들 사이 격차가 있다는 뜻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바람까지
중국은 사람의 외모를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엔 인간 두뇌처럼 사고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에 접목되며 의료, 교육,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쓰임새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휴머노이드 로봇의 혁신 및 발전을 위한 지도 의견’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 주도로 오는 2025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 시스템을 구축하고, 휴머노이드 로봇 완성품을 글로벌 선두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대량 생산까지 하겠다는 게 발표의 주요 골자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글로벌 영향력을 갖춘 2~3개 기업과 다수의 전문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2~3개의 로봇 클러스터까지 조성해 2027년에는 자국 내에서 안정적인 로봇 생산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산업정보기술부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스마트폰, 친환경 자동차에 이어 (인간 생활을 바꿔놓을) 파괴적 제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발맞춰 민간 기업들도 ‘로봇 왕국’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 중이다. 중국의 스타트업인 푸리에 인텔리전스는 자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GR-1′의 대량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 로봇은 높이 1.65m, 무게 55kg으로 보행 최대 속도는 시속 5km에 이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중화권 매체에 따르면, 푸리에 인텔리전스는 올해 중 휴머노이드 로봇 500대를 단거리 물품 배송, 보안 점검 등에 활용할 방침이다. 단순한 업무로 시작한 뒤 추후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운전기사, 요리사, 소방관 등 다양한 직업과 업무를 맡기는 게 목표다.
한 로봇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물론 전 세계 곳곳에서 저출산·고령화와 노동 인구 감소 현상이 벌어지며 제조업에서부터 서비스업, 의료 분야 등 산업 전반에 로봇 대중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향후 4년간 연평균 50%씩 성장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나오는 만큼, 로봇과 AI 등에서 필수 기술력을 선점하는 국가가 향후 ‘로봇 시대’를 주도하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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