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스마트폰에 바퀴 달기
(서울=뉴스1) 이동희 기자 = 경기 화성의 남양연구소는 현대차·기아의 연구개발(R&D) 핵심 거점이다. 2023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처음으로 본사 건물 바깥에서 신년회를 진행하면서 낙점한 곳이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도 남양(Namyang)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현대차·기아의 성장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남양연구소가 요즘 시끄럽다. 조직개편 때문이다. 지난해 말 그룹 R&D를 총괄해온 최고기술책임자(CTO) 김용화 사장이 부임 6개월 만에 물러났다. 업계에선 사실상 경질로 봤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 R&D 역량을 결집하겠다며 조직개편을 공식화했다.
조직개편 내용은 지난 16일 임직원 설명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골자는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R&D 조직을 통합·정비해 미래차 플랫폼(AVP, Advanced Vehicle Platform) 본부를 신설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R&D를 총괄하던 CTO 조직은 R&D 본부로 전환해 'R&D 원팀'의 일부를 맡는다.
지금까지 CTO 조직에서 SW 개발까지 진행했으나, CTO 바깥에서 별도로 SW 개발을 맡았던 조직과의 협업에서 갈등이 표면화하면서 SW와 하드웨어(HW) 개발을 이원화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신설 AVP본부장에 송창현 사장을 선임했고, R&D본부장은 기존 CTO 산하 TVD본부장인 양희원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앉혔다. 'R&D 원팀'으로 두 본부가 협업한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미래차 혁신은 AVP본부가 주도하게 됐다.
업계에선 이번 R&D 조직개편을 '전통의 기계공학과와 새 물결인 컴퓨터공학과의 충돌'로 바라보기도 한다. 내연기관차에서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라는 미래차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SW를 다루는 컴퓨터공학과 출신들과 엔진, 변속기 등 기계를 다뤄온 기계공학과 출신들이 R&D 방향성과 일하는 방식 등에서 갈등이 커졌다는 것이다.
남양연구소에는 현대차그룹을 지금까지 키워온 기계공학도들이 많고, 이번 조직개편에서 SW 총괄조직을 이끌게 된 송창현 사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네이버를 거친 컴퓨터공학도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전 세계 완성차 판매량 3위를 기록했다. 2년 연속 글로벌 빅3를 달성한 것은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기존 내연기관차의 우수한 상품성에다 빠른 전동화 전환 결단력이 더해진 결과다.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퍼스트무버'(선도자) 평가를 받는 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니, 반세기 전 일본의 미쓰비시 엔진을 가지고 차를 만들었던 때를 떠올리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래도 정의선 회장은 올해 초 기아 광명공장에서 열린 그룹 신년회에서 "소프트웨어 경쟁에서 뒤처진 면이 있다"며 "열심히 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독려했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도 거듭 SW 개발 속도가 늦다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CES 2024에서 만난 유지한 현대차 자율주행사업부 전무는 "테슬라를 포함한 SW 산업에서는 (현대차·기아가) 아직 톱이라고 하기는 이르다"며 "더 노력해야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미래차 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다. 내연기관 시대를 주름잡았던 레거시 업체는 물론 글로벌 정보기술(IT) 빅테크 업체들도 전기차를 비롯한 모빌리티 기술 경쟁에 뛰어들었다. '대륙의 실수'로 잘 알려진 중국 가전업체 샤오미도 전기차를 만들었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이 갈수록 전통의 모터쇼보다 CES 같은 IT쇼에 집중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타고 다닐 일은 없다. 바퀴를 달고 움직일 때에야 비로소 자동차가 된다. 그것도 바퀴가 4개는 있어야 안전한 이동수단이라는 차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다. 본질을 잊으면 모래 위에 성을 쌓게 된다. 현대차그룹의 이번 R&D 조직개편이 기술개발 주도권 다툼이 아닌 혁신적인 미래차를 낳기 위한 건강한 진통이기를 기대한다.
yagoojo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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