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

김석 경제에디터 2024. 1. 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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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두번째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10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올해는 전 세계 76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실시되는 ‘슈퍼 선거의 해’다. 전 세계 인구의 약 40%가 투표권을 행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가 경제를 휘두르는 ‘폴리코노미(Policonomy·politics+economy)’ 현상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오는 4월 총선을 치르는 한국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정부는 올해 업무보고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로 이름 붙였다. 업무보고를 주제별로 묶고, 일반 국민도 참여하는 형태로 실시한다. 각 부처 수장이 대통령에게 비공개 업무보고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던 틀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지난 4일 시작해 10여 차례 진행될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정부는 이번 민생토론회 시리즈를 통해 ‘검토만 하는 정부’가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이 원한다면 어떤 문제도 ‘즉각 해결하는 정부’를 지향하고자 한다”며 “특히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장으로 각 민생토론회를 꾸려갈 것”이라고 했다. 민생토론회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열린 네 차례 민생토론회에서 많은 말을 했다. 그중 내 인상에 가장 강하게 남은 말은 이것이다. 지난 10일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한 두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관사 녹물만 심하지 않았어도 제가 사표를 안 내고 근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윤 대통령은 2002년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전업했다가 1년 만에 검찰로 복직했다.

부러웠다. 2002년이면 IMF 외환위기의 상흔이 우리 사회에 깊게 남아 있던 때였다.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친한 친구들이 여럿 직장을 잃었다. 나도 집안 곳곳에서 문제가 생겨 어려움을 겪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힘든 때도 있었지만 그만둔다는 건 꿈을 꿀 수도 없었다. 그런 시절에, 계속 살지도 않을 관사의 녹물이 직장을 그만두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 좋은 부모 만나서 거칠 것 없이 살 수 있었던 그가 부러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선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우산장수의 부모는 자식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비 오는 날이 많기를 바랄 것이다. 반대로 소금장수의 부모는 맑은 날이 많기를 바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누구의 부모일까.

윤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관사 경험을 얘기하며 “우리 정부는 재개발·재건축에 관한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고 했다. 깨끗한 새집에서 사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저 돈이 문제일 뿐.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확 풀어주면 집 가진 사람들은 돈 벌 기회가 늘어나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높아진 전세나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곽으로 밀려나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는 들었을까.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사정이 얼마나 급한지 알고 있을까. 정부는 이날 전세사기 피해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기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감정가에 ‘협의 매수’하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기자들이 취재해보니 이 방안을 적용받을 수 있는 주택은 사실상 없다고 한다. 집주인이 사라져 한겨울에 물 새는 집에 살고 있는 피해자들은 여당인 국민의힘의 반대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정부는 세금도 확 깎아주겠다고 했다. 증권거래세를 인하하고,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를 추진한다. 91개 부담금도 전면 재검토를 추진한다. 모두 합하면 국고 수입이 30조원 넘게 줄어든다고 한다. 세금 인하는 대부분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물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방안도 있다. 영세 소상공인 126만명에게 20만원씩 총 2520억원의 전기요금을 감면해줄 계획이다. 취약계층 365만가구에 대한 전기요금 인상을 1년 더 유예해 가구당 월 최대 6604원을 계속 할인해준다. 없는 살림에 몇천원이라도 도와주는 게 고맙긴 하지만 부자들이 받는 혜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를 향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법안을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19세의 나이에 숨진 구의역 김모군, 24세에 세상을 떠난 김용균씨를 생각하면 하기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민생을 말하지만 누구의 민생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민생은 아닌 것 같다.

김석 경제에디터

김석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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