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 시대의 멸종위기종은 ‘정자’… 살리려면 살 빼라

이종현 기자 2024. 1. 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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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정자 농도·정자 수 모두 50% 감소
화학물질 접촉·비만 등이 생식 건강 해쳐
허리둘레 5㎝ 증가하면 정자 농도 6.3% 감소

‘Sperm Count Zero(정자 수 제로)’

2018년 남성 매거진 ‘GQ’는 남성들의 생식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한 세대 안에 생식 능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분석 기사를 실었다. GQ는 뉴욕 아이칸 의과대학의 샨나 스완 박사가 주도한 2017년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스완 박사는 이 연구에서 1973년부터 2011년까지 4만2000여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한 185건의 연구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제까지 정자에 대해서 이뤄진 메타 분석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연구였다.

정자 이동을 현미경으로 본 모습의 일러스트. 정자는 편모의 탄성을 이용해 유체에 에너지를 잃지 않고 전진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WSU

2017년에 나온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연구진은 정액 1ml에 포함된 정자의 농도와 총 정자 수라는 두 가지 척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1973년부터 2011년까지 정자의 농도와 총 정자 수 모두 연평균 약 1.5%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50년에 걸쳐 50~60%가 감소한 셈이다. 연구진은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2040년대 중반에는 정자 수의 중앙값이 ‘0′에 도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GQ가 한 세대 안에 생식 능력을 모두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한 근거다.

2017년에 발표돼 세상을 놀라게 한 이 연구의 후속 연구 결과가 지난해 발표됐다. 스완 박사와 히브리대 하가이 레비 교수가 주축이 된 국제 공동연구팀은 작년 4월 국제학술지 ‘인간 생식 업데이트(Human Reproduction Update)’에 추가 연구 결과를 내놨다. 2017년 연구는 유럽과 북미, 호주 지역의 남성을 대상으로만 진행됐다. 2023년에 발표한 추가 연구는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 지역의 남성까지도 연구 대상에 포함했다. 연구대상도 더 커졌다. 1973년부터 2018년까지 남성 5만7168명을 대상으로 한 288개의 연구가 활용됐다.

2017년 연구 결과에 아시아 지역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남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자 멸종 위기는 유럽과 북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2023년 연구 결과를 보면 정자 농도와 정자 수 감소 현상은 모든 대륙에 똑같이 확인됐다. 특히 최근에는 감소폭이 더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자 농도는 1972년 이후 매년 평균 1.16% 감소하고 있는데, 2000년 이후로만 한정하면 매년 평균 2.64%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레비 교수는 “두 차례 연구에서 확인된 남성 정자의 감소는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며 “인간의 생존을 위해 남성의 생식 건강 악화를 어떻게 막아야 할 지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왜 정자가 멸종 위기에 몰린 걸까. 전문가들은 각종 화학물질과의 접촉이 늘면서 생식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플라스틱과 살충제에서 나오는 내분비계 교란 화학물질(EDC)이 주범이다. 화장품이나 개인 위생용품, 가구를 만드는 데 쓰이는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 같은 인공 화학물질이 생식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노팅엄대학교의 리처드 레아 교수 연구팀은 1988년부터 2014년까지 개의 정자 운동성을 측정한 연구 결과를 2016년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는 인간과 비슷한 환경을 공유하는 개의 정자를 연구해 화학물질이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악영향을 주는지 확인한 연구였다. 연구진은 관찰 기간 정자의 질이 감소했다며 화학물질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의 생식 능력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결론냈다.

국제학술지 '인간 생식 업데이트(Human Reproduction Update)'에 실린 연구 결과. 전 세계적으로 정자 농도와 정자 수 감소가 확인됐다. 2000년 이후 정자 농도 감소폭이 더 가팔라졌다./Human Reproduction Update

화학물질 같은 환경 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활 습관도 정자를 멸종위기로 몰고 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불임센터는 176쌍의 임신 성공률과 남성의 정자 수를 측정했는데, 남성의 허리둘레가 5㎝ 증가할 때마다 정자 농도가 6.3% 감소한다는 통계를 확인했다. 스페인의 로비라비르힐리대학교의 살라스 후에토스 연구원은 “과도한 체지방은 염증 분자를 생성해 생식기에 혼란을 일으키고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줄인다”며 “정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호르몬 균형이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다이어트를 하고 체중을 줄이면 정자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연구진은 비만 남성 56명에게 8주 동안 하루 800칼로리로 칼로리 섭취를 제한하는 다이어트를 실시한 뒤 정자 수를 확인했다. 그 결과 실험 대상인 남성들은 평균 16.5㎏을 감량했고, 정자 수는 40% 이상 증가했다. 다이어트 1년 후 다시 점검하자 체중 감량을 유지한 남성은 정자 수가 그대로였지만, 살이 다시 찐 남성들은 정자 수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적당한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정자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호두와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꾸준히 먹는 것과 ‘지중해식 식단’으로 알려진 식단을 유지하는 것도 정자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스완 박사는 “의사가 심장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바꾸라고 말할지 생각해보면 정자 건강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Fertility and Sterility, doi : https://doi.org/10.1016/S0015-0282(16)40454-1

Human Reproduction Update, doi : https://doi.org/10.1093/humupd/dmac035

Scientific Reports, DOI : https://www.nature.com/articles/srep3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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