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법 추진에 ‘마구잡이식 규제’ 비판… 콘텐츠 업계·학계 “법안 전면 재검토 필요”
‘포괄위임금지 원칙’ 헌법 원리 위반
문체부 규제 권한은 법률에 명시…벌금, 징역, 이행강제금까지
“문체부가 콘텐츠 업계에서 공정위 역할 하려는 것”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하 문산법)’ 제정을 재추진하는 것과 관련, 웹툰·웹소설 업계를 비롯한 콘텐츠 업계에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규제 및 처벌 대상은 모호한 반면, 시정명령 불이행시 과태료 부과는 물론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어 정부에 과도한 규제 권한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안이 통과되면 그간 전 세계에서 일었던 K-콘텐츠 열풍을 오히려 꺼뜨릴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문체부는 문산법과 관련, 방송통신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타 부처와 최종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산법은 작년 저작권 법정 공방 도중 세상을 떠난 ‘검정고무신’ 작가 고(故) 이우영씨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논의가 있었다. 문산법은 지난 2020년 유정주 의원 발의안과 2022년 김승수 의원 발의안을 반영해 만든 대안 형태의 법안이다.
법안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법안을 통해 문화 산업 발전 토대를 마련하고, 공정한 유통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은 대표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나 매출액 10억원 이상의 국내 콘텐츠기업은 단 13%에 불과하고, 10인 미만 사업체가 91%를 차지하는 등 콘텐츠산업의 불균형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돼 있다. 창작자 개인 뿐 아니라 중소 창작 업체들까지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법안에서 규제 대상을 모호하게 설정한 채 문체부가 시정조치까지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점이다. 문산법은 금지 행위의 유형을 ▲제작행위 방해 ▲문화상품 판매 거부 ▲납품 후 재작업 요구 ▲기술 자료·정보제공 강요 ▲판매 촉진비 전가 등으로 분류하면서 “정당한 이유 없이 이같은 금지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다. 법률 자체에서 업종, 대상, 기준, 예외, 특별 사항 등을 특정해야 하는데 이같은 내용을 전부 하위법인 시행령으로 미뤘다.
법리적 관점에서 ‘포괄위임 금지 원칙’이라는 헌법 원리를 위반했을 뿐 아니라, 시행령은 개정이 법률보다 상대적으로 쉬워 규제하고자 하는 대상과 기준이 상황에 따라 바뀌거나 추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산법에는 또 문체부가 법을 위반한 사업자에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정조치에 따르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문체부는 규제 권한을 강력하게 갖게 된다. 사실상 문체부가 문화산업계의 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같은 상황에서 업계에서 과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시행령이 아닌 법률 입법 단계에서부터 업계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웹툰협회, 한국웹툰작가협회, 한국만화스토리협회, 한국만화웹툰학회, 한국웹툰산업협회, 우리만화연대 등은 성명서를 내고 “문체부가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직접 대상인 창작자와 기업은 해당 법안에 대한 사전 청취는 물론 의견 반영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라며 “신중한 고려와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문체부는 “소관 부처로서 콘텐츠 업계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우려가 없도록 추진하겠다”면서도 “장르별 특수성을 반영한 불공정행위의 세부 기준 등은 동 법률에 따라 하위법령에 위임되어 있다”고 밝혔다. 법안 통과를 강행하되 세부 기준은 여전히 시행령으로 정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문체부가 시행령에 업계 의견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사실상 법안을 그대로 강행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며 “시행령이 아니라 법안에 업계 의견을 반영하는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산법에는 ‘이행강제금’ 규정도 포함돼 있다. 문체부의 시정명령을 받은 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금지행위 위반과 관련해 조정을 받으려면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해야 한다. 이 교수는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는 사업자와 이용자간 분쟁이 있을 때 역할을 하는 곳인데, 문산법 취지와는 동떨어진 곳”이라며 “문산법이 통과되면 문체부에 공정위, 방통위까지 업계 입장에선 3중 규제가 될 수 있다. 마구잡이식 규제에 K-콘텐츠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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