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말하는 방송사가···” 9년차 아나운서, 대본 대신 팻말을 들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해고 통보 받아
노동위·법원 부당해고 판결에 복직했지만
단시간 근무에 낮은 월급...편집요원 발령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원래 직무와 전혀 다른) 편집요원으로 배치한 것은 소송에 대한 보복성 징계라고밖에 안 느껴져요.”
UBC 울산방송에서 날씨를 알려주고 뉴스를 진행하던 9년 차 아나운서 이산하씨는 지난 17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요즘 회사 앞에서 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2015년부터 UBC에서 모닝와이드 뉴스 앵커, 라디오 방송 <이산하의 잠못드는 밤 그대는> 진행, <주말여행, 여기 어때요> 취재·방송 등을 맡아 온 베테랑 아나운서는 어쩌다 회사와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됐을까.
이씨가 회사의 ‘눈 밖’에 난 것은 2020년 팀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면서부터였다. 회사는 2021년 4월 이씨를 해고했다. ‘무늬만 프리랜서’로 근로계약서조차 없이 일한 그에게 노동법은 멀었고 불이익은 가까웠다.
이씨는 포기하지 않고 노동위원회를 찾았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며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고, 2022년 12월 서울행정법원의 결론도 같았다. 하지만 해고 8개월 만에 복직한 그를 기다린 건 4~6시간 단시간 근무 계약서와 140만~170만원의 월급이었다. 지난 5일에는 이전 업무와 거리가 먼 편집요원으로 발령 받았다.
이씨는 이 같은 대우가 ‘괘씸죄’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회사는 제가 가진 능력이나 회사가 가진 기대치를 봤을 때, 최저시급만 안 주면 된다고 말했다”며 “회사는 ‘이것이 최고의 대우’라며, ‘부당하면 노동위에 진정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주부터 1인시위에 돌입한 이씨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오랜 기간 싸우면서 속상함도 무뎌졌지만, “힘들지만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제는 속상하기보다 분노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제가 한 방송을 다시 보거나 응원해주시는 분들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한다”면서도 “그래도 맨날 운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방송사의 역할’을 믿는다. 해고 전 그를 괴롭혔던 팀장은 ‘공론화하지 마라. 방송 계속 할 거 아니냐’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부당해고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더 이상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할까봐 고민했다”면서도 “그래도 방송사는 정의를 말하는 곳이자 목소리를 내는 곳이고, 그리고 저는 목소리를 내는 아나운서다”라고 말했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는 것도 그의 바람이다. 자신의 문제이고, 동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는 “온전한 노동자성을 보장받고 싶다. 차별 없이 근로계약서를 쓰고 정상적으로 일하고 싶다”며 “애정하는 방송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런 일을 겪고 있지 않냐. 환경이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UBC 측은 “복직 후 (이씨가) 기상 뉴스와 라디오 뉴스를 담당했는데, 기상 뉴스라는 콘텐츠가 경쟁력이 떨어져 다른 업무를 찾아보자고 협의를 해왔었다”며 “저희들은 정당하게 협의 과정을 거쳐 업무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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