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긴 당뇨병 '이 암' 때문?…'기름 낀 대변' 그냥 넘기면 안 돼

정심교 기자 2024. 1. 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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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의 내몸읽기]

갑자기 당뇨병이 생겼거나 당뇨병을 오래 앓은 환자가 이유 모르게 혈당이 조절되지 않을 때 의외의 질환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바로 '췌장암'이다.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걸리면 예후가 매우 나쁜 암으로 꼽힌다. 지난해 국내 암 사망률(10만 명당 사망자 수)은 162.7명으로, 전년보다 1.6명(1%) 증가했다. 특히 2022년 췌장암 사망률은 전년보다 5.8% 상승했는데 위암 사망률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문제는 췌장암 환자가 늘고 있다는 것.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췌장암 진료 환자는 2017년 1만7341명에서 2022년 2만4847명으로 급증했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상협 교수는 "췌장은 복부 깊은 곳에 있어 조기 발견이 어렵다"며 "수술이 가능한 초기 단계에서 발견되는 비율은 20%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췌장은 몸속에 꼭꼭 숨어있다. 명치와 배꼽 사이, 위와 척추 사이에 길이 15㎝의 췌장이 있다. 췌장이 배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탓에 영상 검사가 아니면 췌장을 볼 방법이 없다. 엑스레이나 일반 초음파로도 췌장을 볼 수 없다.

췌장은 몸에서 어떤 일을 할까. 췌장의 기능은 크게 외분비 기능과 내분비 기능으로 나뉜다. 외분비 기능은 췌장액을 십이지장으로 분비해 소화·흡수를 돕는 역할을 말한다. 췌장액은 3대 영양소(탄수화물·단백질·지방)를 소화하는 소화효소가 든 액체다. 우리가 먹은 음식이 위·십이지장을 거치면 췌장액에 뒤섞여 몸이 3대 영양소를 소화·흡수한다.

내분비 기능은 혈액을 통해 호르몬을 분비해 당 대사를 조절하는 역할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호르몬이 인슐린이다. 췌장이 망가지면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게 돼 당뇨병이 생긴다.

이런 췌장이 제 기능을 못 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3대 영양소 중 유독 지방이 몸에 흡수되지 않아 배변 시 기름이 많이 낀 '지방변'이 나온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분해하는 소화효소는 췌장 말고도 다른 기관에서도 분비되기 때문이다.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는 췌장에서만 분비된다. 췌장이 망가지면 지방이 대변을 통해 그대로 배출된다. 지용성 비타민, 미네랄이 몸에 흡수되지 않아 골다공증, 영양실조에 빠진다. 기름기가 있는 대변을 본다면 췌장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류지곤 교수는 "췌장의 내분비·외분비 기능이 동시에 저하되면 소화·흡수가 잘 안되고 당뇨병도 겹쳐 오면서 살이 급격하게 빠진다"고 언급했다.

췌장암의 증상은 사람마다 편차가 큰 편이다. 어떤 사람은 전혀 아프지 않고, 어떤 사람은 복통이 심해 절절매기도 한다. 그래도 대표 증상을 꼽자면 △복통 △체중 감소 △황달 △식욕 부진 △지방변 △당뇨병으로 압축된다.
전이된 후 발견하면 생존율 5% 안 돼
우리나라는 췌장암 치료에 앞서는 데도 불구하고 췌장암 전체 환자의 5년 이상 생존율은 13%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 중 절제 수술이 가능한 1기에서 2기 초반인 경우 생존율은 50%까지 오른다. 국소 진행성 췌장암은 20~30%, 전이가 있는 4기 췌장암은 5% 미만이다. 문제는 췌장암 환자 대부분이 전이된 상태에서 발견된다는 것.

췌장암의 원인은 노화, 흡연, 오랜 당뇨병, 유전적 요인이다. 췌장암은 75세 전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췌장암을 유발하는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는 흡연이다. 담배만 끊어도 췌장암 발생률이 30% 줄어든다. 이상협 교수는 "비만하면 췌장암이 더 잘 발생한다고 보고된다"며 "따라서 췌장암을 막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통해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췌장암 가족력이 있으면 없는 사람보다 췌장암이 더 잘 생긴다. 하지만 일반인이 췌장암에 걸릴 확률이 평생 1%에 머물 정도로 드문 암이고, 가족력이 있어서 2~3배 높아진다 해도 2~3%에 불과한 수준이다. 다만 유전으로 발생하는 가족성 췌장암의 경우 특별히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한다. 가족 중 췌장암이 발병했던 환자가 여럿인 경우 그중 가장 어린 나이를 기준으로 10년 전부터 주의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며, 필요하면 검사도 받는 게 권장된다. 예컨대 가족 중 췌장암 환자 2명이 각각 60세, 75세에 처음 진단받았다면 50세(60세의 10년 전)부터는 주의 깊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췌장암은 조기 발견도 어려운 데다, 암세포가 빨리 자라 전이가 빠르다. 췌장암이 발견된 환자 가운데 수술할 수 있는 환자는 20%도 안 된다. 수술 치료를 못 하는 경우 차선책은 항암치료다. 그런데 지난 20여년간 췌장암의 항암제 신약 개발이 다른 암보다 더디다. 췌장암이 암 중에서도 드문 암인데다, 어떤 항암제를 써도 잘 듣지 않아서다. 검진과 예방이 중요한 이유다.

췌장암 정기 검진은 일반인보다 췌장암 고위험군에 권고된다. 췌장암 고위험군으로는 △직계가족 중 2명 이상이 췌장암 환자일 때(가족성 췌장암) △어릴 때부터 만성 췌장염을 앓아온 경우(유전성 췌장염) △건강검진에서 췌장에 점액성 낭종(물혹)이 발견된 경우 △당뇨병을 오래 앓을 때가 해당한다. 당뇨병을 오래 앓았는데 갑자기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다면 췌장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췌장암이 의심될 때 췌장 전체를 꼭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복부 CT가 권장된다. 환자에게 조영제 알레르기가 있거나 복부 CT를 찍지 못하는 환자라면 복부 MRI를 대신 선택할 수 있다. 췌장암이 강력히 의심되는데도 CT·MRI로 췌장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초음파 내시경이 권고된다. 류지곤 교수는 "몇 달 새 복통이 점점 심해지거나, 입맛이 뚝 떨어진 경우, 최근 6개월 이내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몸무게가 10% 이상 줄었다면 췌장 정밀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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