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가계부채 대책…전세대출 규제하며 ‘50조’ 정책대출은 그대로
‘43조’ 특례보금자리론, 가계대출 증가 주범으로 지목
“정책자금에만 DSR 규제 예외? 정책 앞뒤 맞춰야”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정부가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그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던 전세대출을 포함한 만큼 예년보다 강력한 가계부채 관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내달부턴 스트레스 DSR 제도까지 시행되면서 정부가 올해 가계부채 잡기에 성공할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DSR 규제 예외 대상인 수십조원 규모의 정책 대출이 풀릴 예정이라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유주택자 전세대출 이자상환분 DSR 적용 추진
18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가계부채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DSR 적용 범위를 전세대출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앞으로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추가로 전세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상환분에 대해 DSR이 적용될 예정이다. 당국은 서민·실수요자의 주거 안정성을 고려해 적용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가운데, 구체적인 시행 시기는 연내 확정할 계획이다.
DSR은 연 소득에서 각종 금융 부채의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현행 차주별 DSR 규제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신용대출 등을 받을 때 매년 갚아야 할 원리금이 연 소득의 40%를 넘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중 전세대출은 적용 예외 대상으로 분류돼 왔다.
지난해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10조1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2년엔 고금리 기조로 인해 8조8000억원 감소했지만, 주담대가 급증하면서 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당국은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보지만, 여전히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높은 수준인 만큼 예년보다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저금리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나라가 온통 빚으로 막 쌓여있는 상태인데 이를 적정히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방향"이라며 "DSR 규제를 통해 상식적으로 갚을 수 있는 범위에서 빚을 관리하자는 것"이라고 전세대출의 DSR 포함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더해 미래의 금리변동 위험을 반영하는 '스트레스 DSR' 제도도 시행된다. 대출을 받기 위한 DSR 산정 시 가산 금리를 부과해 대출액을 줄이는 게 핵심이다. 내달 26일부터 은행권 주담대를 시작으로 점차 대상이 확대될 예정이다. 당국이 올해 가계부채 억제의 가닥을 DSR 규제로 잡은 셈이다.
정책자금 대출 줄줄이 시행…DSR 예외 대상 많아
일각에선 DSR 규제 범위 확대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50조원 규모의 정책자금 대출이 줄줄이 출시되는 것에 대해선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DSR 규제를 확대하는 반면, 국토부 등 정부 부처에서는 규제 밖 정책 대출 자금이 대거 풀리며 엇박자를 보인다는 것이다.
당장 오는 29일부터 시행되는 27조원 규모의 신생아특례대출과 다음 달 출시되는 20조~30조원 규모의 청년주택드림대출이 대표적인 정책대출 상품으로 꼽힌다. 시중은행에 비해 상당히 유리한 금리 조건을 갖췄지만, DSR 규제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이 대출 수요를 자극하면서 가계부채 잡기가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이다.
신생아특례대출은 2년 내 출산한 무주택 가구를 대상으로 조건에 따라 최대 5억원을 연 1.1~3.0% 수준의 금리로 빌려주는 상품이다. 청년주택드림대출은 만 19세~34세 무주택 청년에게 최저 연 2.2% 금리로 최장 40년의 대출을 지원한다.
이에 더해 특례보금자리론의 판매가 중단되면서 보금자리론 재출시도 목전에 두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주택금융공사 등은 대출 요건과 금리 수준 등 세부 내용에 대한 막판 조율에 들어갔다. 특례보금자리론보다 문턱은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지만, 시중보다 낮은 3~4% 수준의 금리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DSR 적용 여부에 대해서도 확정된 바가 없다.
앞에선 조이고 뒤에선 풀고…정책 대출 교통정리 시급
실제로 정책대출 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은 지난해 가계부채 급증을 견인한 '주범'으로 꼽힌다. 정부가 소득에 관계없이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최대 5억원을 저금리로 빌려준 가운데, DSR 적용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 예정된 정책대출도 특례보금자리론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가계대출에서 주담대는 45조1000억원 증가해 전년 증가액(27조원) 대비 18조1000억원 급증했다. 이중 특례보금자리론이 당초 공급 목표액(약 39조원)을 넘어선 43조원이 공급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한국은행도 여러 차례 우려를 표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생아특례대출이 무주택 서민과 젊은층과 저출산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제도가 좋다고 해서 소득수준이 안 되는데도 돈을 빌려주는 게 도움이 되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8월 한은 금통위 회의록에도 "신생아 특례대출 등이 새롭게 시행되면서 정책금융이 가계대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언급된 바 있다.
전문가도 DSR 규제 범위를 정책금융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민들의 주거비용 부담 등이 커지지 않도록 DSR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관리 방향"이라면서도 "정책자금에만 DSR 규제를 예외로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가계부채 관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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