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값 931원’ 받은 95세 정신영 할머니…“떠나기 전 일본 사죄 들었으면”
“‘어린 소녀들을 데려가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이제는 일본이 사죄의 말 한 번 해줬으면 좋겠어요.”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을 한 대가로 지난해 7월 6일 일본 정부로부터 99엔, 한화로 931원을 송금받은 정신영 할머니(95)는 18일 오전 광주지법 205호 법정을 나서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정 할머니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3명과 함께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날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정 할머니 등에게 1818만원에서 1억6666만원까지 각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휠체어를 타고 취재진 앞에선 정 할머니는 그동안 일본 정부로부터 받아왔던 핍박과 서러움이 복받친 듯 연신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손으로 닦아냈다. 특히 작년 일본 정부가 보낸 931원이 가슴에 큰 상처로 자리한 듯했다.
정 할머니는 “아이들 과잣값도 아니고, 사탕 한 개 값이나 될지 모르는 931원을 보내왔는데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 당시 정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만행에 분노했지만, ‘역사에 낱낱이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돈을 입금받았다고 한다.
이 돈은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을 했던 정 할머니의 후생연금 탈퇴수당이다. 1944년 나주대정국민학교를 졸업한 정 할머니는 같은해 5월 “일본에 가면 공부도 가르쳐 주고 중학교도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됐다. 그는 전쟁 속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일했지만 해방이 돼 고향에 돌아올 때까지 월급은 한 푼도 쥐어보지 못했다.
정 할머니는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승소 판결이 확정되자 용기를 내 2020년 소송을 냈다. 그 과정에서 정 할머니의 강제동원 사실이 확인됐고 그제야 일본 정부는 77년 전 임금인 99엔을 입금했다.
정 할머니는 일본과 전범기업의 사과를 받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라고 했다. 정 할머니는 “나이가 들고 갈 길이 머지않았다”며 “과거에는 일본이 전쟁을 치르느라 배고프고 곤란해 못했더라도, 이제는 부흥해 잘 살고 있으니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해주면 고맙겠다”고 호소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이날 입장문을 내 “이번 판결은 사필귀정”이라며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책임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정부도 자숙하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정 할머니 등을 비롯해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총 63건이다. 9건은 원고 승소로 확정 판결났다. 나머지 3건은 대법원, 9건(서울 8건·광주 1건)은 항소심, 42건(서울 28건·광주 14건)은 1심에 계류 중이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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