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빠진 바이오파운드리…과학자들 "합성생물학 특성 이해못해 아쉬워"
정부가 3대 전략기술 중 하나로 첨단바이오를 꼽은 가운데 바이오 연구 역량을 주도할 바이오파운드리 구축 사업에 과학계가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당초 계획보다 예산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R&D) 사업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바이오파운드리의 기반이 되는 합성생물학 특성상 시설 구축과 시설에서 가능한 연구가 함께 이뤄져야 과학적으로 의미있는 연구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18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6일 올해 첫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 총괄위원회를 열고 ‘바이오파운드리 인프라 및 활용기반 구축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합성생물학 기반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고 바이오파운드리 전용 센터 건립 등이 추진된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앞서 지난 2021년 사업기획 당시 7000억원 투자 계획이 마련됐지만 2023년 초 3000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최종 예타 통과안은 1263억원의 예산이 확정됐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이번 통과안에선 바이오파운드리 시설 구축에 대한 부분만 담겼고 이 곳에서 이뤄지는 R&D 사업은 제외됐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인공지능(AI)과 로봇기술 등을 접목해 합성생물학 등 광범위한 바이오 연구개발의 과정을 자동화·고속화하는 인프라다. 로봇 액체 처리장비, 고처리량 분석장비와 같은 하드웨어와 연구개발에 필요한 기능을 실행하고 인력과 데이터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SW) 등이 포함된다.
연구자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바이오파운드리 구축 사업이 추진된 것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기존 사람이 하던 작업을 기계가 대체하면서 연구개발 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예타 통과안에서 R&D가 제외된 것에 대해선 아쉬움을 드러냈다. 바이오파운드리에서 사람이 수행하는 연구사업이 당장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생물을 다루는 합성생물학은 분야의 특성상 기계가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파운드리와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또 많은 연구가 기계 혼자만의 힘으로는 수행할 수 없고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오파운드리에서 과학적으로 도전적인 연구가 이뤄지기 위해선 시설과 사람이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화학적 소재를 미생물로 대체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화이트바이오 분야 연구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생물을 개량하기 위해선 보통 전기충격을 사용한 DNA 형질전환 기법이 사용되는데 이 기법은 바이오파운드리 시설에서 구현되기 어렵다. 새로운 성질의 미생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핵산 분리 실험은 사람이 각 실험을 실시하면서 최적의 프로토콜을 찾아나가는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현재 로봇 팔 기술 수준으로는 기계에게 맡길 수 없는 작업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R&D 사업이 함께 통과하지 않은 것은 바이오파운드리에서 어떤 연구를 수행하겠다는 목표를 정하지 못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합성생물학 전문가인 한 교수는 "중요한 것은 바이오파운드리에서 생산된 물질을 활용해 어떤 연구를 수행하는가다"며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이 추진되면서 많은 국내 연구자들이 시설에 적합한 연구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당장 연구사업 예산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예타 통과안은 인프라 구축과 연구를 이원화해 바라본 것인데 정부가 합성생물학의 특성을 다소 간과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연구자는 "올해 대규모 R&D 예산 삭감이 이뤄지면서 바이오 분야 연구들도 타격을 입었는데 앞으로 바이오파운드리의 R&D 사업에 충분한 예산이 배정될지 걱정도 된다"고 전했다.
과기정통부는 향후 연계사업을 통해 바이오파운드리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함께 추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바이오파운드리의 구축 진행 상황에 맞춰 적합한 R&D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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