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진 악순환 끊어야 하는데… '대규모 부양책' 끝까지 경계하는 中
디플레·부동산 침체 가속화에도 부양책 자제할 듯
지방정부 부채·美 금리차에 재정·통화 카드 제한적
전문가 “올해 부양책 안 쓰면 디플레 악순환 빠질 것”
중국 경제가 경기 불황과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등으로 인해 올해 4%대 성장률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경기 활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규모 부양책’은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재정·통화정책 모두 지방정부 부채, 미국과의 금리차 등에 막혀 운신의 폭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한편, 중국 경제의 굳건함을 보여주기 위한 신호라는 해석도 있다.
18일 인민일보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지난 16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 참석해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강력한 부양책을 사용하지 않고 단기 성장을 대가로 장기적 위험을 쌓지 않았으며, 대신 내생적 발전 모멘텀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리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앞으로도 대규모 부양책을 쓰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프랑스 투자은행(IB) 나티시스 SA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 수석 아시아태평양 이코노미스트는 “(리 총리의 발언은) 중국이 부양책 없이도 지금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을 나타내는 것 같다”며 “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지난해 경제 성적표가 모두 발표되면서 전문가들은 대규모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경제성장률(5.2%)이 중국 정부의 목표인 ‘5% 안팎’에 부합하긴 했지만,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2월까지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신규주택 건축 면적이 급락하는 등 부동산 경기도 풀리기는커녕 더욱 얼어붙고 있다. 이에 올해에도 중국 정부는 5%대의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유지하겠지만, 실제로는 4%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지 않는 데 대해 정책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지방정부의 막대한 부채 때문에 빚 부담을 늘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비공식 부채가 최대 11조달러(약 1경4800조원)에 달한다는 추산을 내놓은 바 있다. 중국 GDP(126조위안·2경3500조원)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올해 하반기 1조위안(약 186조원) 규모의 초장기 국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지만 전체 GDP에 비하면 약소한 규모인 데다, 이마저도 경기 부양보다는 지방 정부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전했다.
통화 정책도 쉽지 않다. 미국 경제 호조로 인해 금리 인하 기대감이 소멸한 상황에서 중국만 완화적 통화 정책을 내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15일 기준금리 향방과 맞닿아 있는 1년 만기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5개월 연속 동결했다. 당초 시장은 이 금리가 낮아져 오는 22일 기준금리 역시 인하될 것으로 봤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연준이 언제 금리를 내릴지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위안화는 올해 현재까지 달러 대비 1% 이상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금리차가 벌어지면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이로 인해 통화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경제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고 있고, 경제 펀더멘탈이 여전히 굳건하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 대규모 부양책을 자제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신용평가기관 S&P 글로벌레이팅의 루이스 쿠이즈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성장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하지 않고, 올해까지는 별다른 부양책 없이 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 역시 지난해 중국이 부양책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지금의 경제 지표는 중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고, 중국의 장기적 정치적 이해관계와도 일치하기 때문”이라며 “중국 경제가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을 통해 높은 수준의 성장으로 돌아간다면, ‘공산주의’ 타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해석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이 올해 적절한 경기 부양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보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건스탠리의 로빈 싱 중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디플레이션이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올해는 중국 경제에 매우 중요한 해”라며 “이미 기업들이 부채를 줄이고 자본 지출과 채용을 자제하기 시작했고, 고용 시장이 어려워지고 급여 상승 기대치도 악화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는 매우 의미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조사기업 게이브칼에서 중국 연구를 담당하는 크리스 베도어 부국장은 “부동산 위기가 더 심화한다면, 중국 정부는 시장 반등이 아닌 안정화를 위해 ‘바주카포’(대형 화력을 지닌 경제정책)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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