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의 불꽃 혼 담은…이순옥 개인전 '시와 그림'
“누군가가 과연 내 목숨과도 바꿀만한 의미 있던 일이었나 물으면 나는 무어라 말할까.”(이순옥 시집 ‘불꽃혼 나혜석’- ‘작가의 말’ 中)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후손의 향유를 통해 새롭게 탄생해 영원처럼 이어진다. 지난 16일부터 수원 행궁동 행궁길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이순옥 작가의 스물일곱번째 ‘시와 그림’ 개인전에는 열정으로 가득찼던 나혜석의 예술혼, 또 나혜석의 생애와 영혼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찬 이순옥 작가의 삶이 녹아있다.
나혜석의 삶은 ‘불꽃’과도 같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학가이자 운동가였던 나혜석은 평생 글과 그림을 통해 시대를 이야기했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은 그녀를 타오르게 만드는 동시에 그녀 스스로를 타버리게 만들었다.
시를 쓰고 서양화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25차례 치른 작가 이순옥은 나혜석의 삶에 동질감을 느꼈다. 나혜석이 꿈꿨던 세계, 이루지 못한 세상을 연구하며 그녀의 일대기를 집필한 소설 ‘불꽃혼 나혜석’을 집필하던 지난 2016년 이순옥 작가는 과로로 쓰러졌다.
오랜 혼수상태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그녀에겐 오른쪽 마비라는 장애가 찾아왔다. 그녀는 다시 펜을 들었다. 불굴의 의지로 병원에서 보낸 4년여간의 투병 생활 중 왼손가락으로 100편의 시가 담긴 ‘불꽃혼 나혜석’을 지난 2020년 출간했다. 이후 재활치료를 하며 그녀는 “나혜석의 삶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며 그림을 펼쳐냈다. 이번 전시회에서 관객들은 그녀의 시와 시를 집필하며 든 감상을 녹여낸 약 스무작품 이상의 그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상실의 시대를 지나와 이제 미래를 향한 닻줄을 올린다. 막힌 숨결을 가다듬고 긴 호흡을 하며 항해를 시작한다.…” (‘불꽃혼 나혜석’-‘미래에서 온 여자 사람’ 中)
이번 전시의 메인 중 하나인 ‘나혜석이 세계일주를 하다’에 이순옥 작가는 나혜석이 실제 서울, 북한,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세계일주의 모습을 상상을 통해 녹아냈다. 나혜석의 삶에서 세계일주는 의미가 남달랐다. 1927년 남편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오른 세계여행 길은 그녀에게 새로운 삶과 영감의 행복을 주었지만 동시에 불행을 안겨주기도 했다.
작가는 “나혜석이 부푼 꿈을 안고 세계일주를 떠나 고통 속에 돌아왔지만 그게 바로 인생”이라며 “언제 뭐가 일어날지 모르는, 즐겁고 신이 나다가도 어둠이 찾아오고 다시 그 속에 즐거움이 찾아오는 것”이고 말한다.
또다른 작품에서 그녀는 나혜석에 대한 100편의 시를 한 편의 그림으로 압축했다. 활기차고 대담하면서도 강렬함이 특색인 미국의 추상화가 잭슨 폴록을 연구한 이순옥 작가는 “얽히고 섥힌 우리네 인간사를 표현했다”며 “몸은 힘들지만 커다란 작품을 표현해 내며 내 속도 풀렸다”고 말했다.
“꽃처럼 활짝 웃어본다. 세상을 품에 안고 어둠을 멀리 쫓아 낸다.…뿌연 안개 걷어 내고 박차고 알에서 깨어난다.”(‘불꽃혼 나혜석’ 시집-‘나혜석이 꽃처럼 활짝’ 中)
전시에는 붉고 강렬한 그림이 여럿 펼쳐져 있다. 이 작가는 나혜석의 가슴 속에 활화산처럼 뿜어나오는 정열과 꽃처럼 피어난 그녀의 모습을 표현했다. 동시에 이 작가 본인의 나혜석에 대한 열정과 갇혀 있는 시대와 민족 속 세상에 대한 여성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나타냈다.
이순옥 작가는 원래의 꿈이었던 나혜석 일대기의 소설을 완성하고, 이를 영화로 만들어낼 계획도 가졌다. 그녀는 “영화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시와 그림, 소설이 완성되면 이 모든 과정을 모티브로 한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나혜석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인 수원 행궁동이 지금의 젊은 이들에게 즐거움의 공간이 되었듯 그는 100년 전 역사 속 인물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는 존재”라며 “나혜석의 발자취를 같이 즐거워하고 아파하며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인간으로 그녀를 본받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22일까지.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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