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결심한 김정은”을 어떻게 대응할까
[아침햇발] 박민희|논설위원
북한이 남북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헌법에 규정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핵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핵무력법 내용도 이미 헌법에 명시했다. ‘민족’ ‘통일’의 개념은 완전히 지우고, 핵무력을 새로운 국시이자 종교처럼 강조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변화다.
북한의 의도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있다. 당장의 최우선 목적은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을 방지하고 내부를 단결시켜 경제 발전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핵·미사일 능력 증강과 북-중-러 밀착을 통해, 여건이 조성되면 핵 무력에 기반한 무력통일 노선도 추진하는 위험한 카드도 쥐고 있으려 한다.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미국과 핵 군축 협상은 할 수 있지만, 한국과의 협상이나 비핵화 가능성은 없다고 거듭 명백하게 선언했다.
미국 내에서 북한 정치와 북핵 문제에 가장 정통한 전문가들로 평가받는 로버트 칼린과 지그프리드 해커가 “김정은은 전쟁을 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면서 한국전쟁 직전과 같은 위험한 상황이라고 한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도 지난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에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와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을 전환점으로 북한은 북미 협상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고 핵무력 증강으로 궤도를 근본적으로 수정했으며, 한국에 대해서는 ‘근친 증오’를 품게 돼 2018년 남북 정상회담 같은 국면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물론 김정은이 전쟁을 결심해도, 김정은 마음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얼마나 정확하고 신중하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론은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대응을 보면, 여전히 총선을 앞두고 북한 문제를 어떻게 국내 정치에 유리하게 이용할까에만 집중하고 있다. 남북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도 강하게 맞대응해 ‘북한 정권 붕괴’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는 오판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신원식 국방장관이 큰소리 치는 배경은 미국의 힘과 전략무기에 대한 기대이다. 정작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두 개의 전선’에서도 고전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과 접경지대에서 위험천만한 충돌을 불사하다가 불길이 번지면 해결할 여력이 없다.
‘한미일 협력’이 요란하지만 한국 정부가 북핵 해결의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미·일을 설득하면서 북한의 전략적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북핵 문제가 방치되는 데 대해서는 워싱턴의 많은 전문가들도 우려하고 있다. 김정은이 재래식 무기와 경제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핵무기로 위협하려면, 중요한 전제는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 또는 최소한 묵인을 얻어내는 것이다. 김정은은 북-러 밀착으로 전략적 이익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올해는 중국을 방문해 ‘북-중-러’ 연대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1950년 초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의 동의를 받아낸 뒤 중국의 마오쩌둥을 끌어들여 한국을 침공했던 것과 비슷한 정세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한국이 지금처럼 중국과의 관계를 방치한다면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도 결국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윤석열식 대응이 무모하다면, 야당과 진보세력이 더 나은 대안을 내놓고 여론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기존의 ‘민족끼리의 대화와 경제 지원으로 비핵화를 달성하는 카드’는 효력을 다했음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한국에서 민주당이 재집권하거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돌아오면, 다시 김정은과 남북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오판을 하면 안된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김정은은 한국을 배제한 채 핵보유를 전제로 담판할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고, 그것이 어렵다면 한국에 대한 핵 위협이나 도발 시도를 강화할 것이다. 트럼프가 돌아오는 것을 ‘미국의 쇠퇴, 동맹의 약화’로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한국의 강경보수 세력은 트럼프와의 거래를 통해 자체 핵무장을 향해 본격적으로 나아가려 할 것이다. 진보가 달라진 정세에 대응해 기존 민족주의 해법을 넘어서 안보와 외교를 더욱 잘 관리할 수 있는 정확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김정은의 대남 압박과 도발이 오히려 강경 보수의 정책에 힘을 실어 ‘적대적 공생’을 이루게 된다. 진보세력은 관성에 얽매이지 말고, 폭넓게 전문가들을 모아야 한다.
지난 주말 대만 총통 선거를 보면서 대만인들이 위기 속에서 더 단단해졌다고 느꼈다. 중국이 ‘전쟁이냐 평화냐’를 선택하라며 압박하자, 중국과 거리를 두는 민진당 총통 후보를 선택해 ‘중국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의회에서는 민진당에 과반 표를 주지 않아 반성과 변화를 요구하며 견제했다. 청년들은 현실 문제를 해결할 ‘제3지대’의 대안을 만들었다.
대만인들은 중국의 계속되는 군사적 위협과 고조되는 전쟁 위기, 홍콩에 대한 중국의 탄압을 주시하면서 ‘존망의 위기’를 깊이 고민했고, 최악의 상황에서 가장 신중한 길을 찾아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정치인들은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변화에 눈 감은 채, 한국을 ‘존망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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