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한파’에 도로에 얼어붙은 전기차…“문도 못 열어”
“이렇게 추운 날에 자동차도, 충전기도, 사람도 제대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버 운전자 자베드 스펜서는 미국 시카고에 극강의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한 지난 14일(현지시각) 대여한 전기차 쉐보레 볼트 때문에 추위 속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차량 계기판에 이동 가능 거리가 30마일(48㎞) 남은 것을 보고 충전소를 향해 출발했지만, 몇분 지나지 않아 차가 멈춰버렸다. 결국 그는 충전소까지 차를 견인해 야했다. 이날 미국 아이오와주가 영하 29도로 떨어지고 몬태나주 등은 체감온도가 영하 56도까지 떨어지는 등 ‘북극 한파’가 몰아닥쳤다. 시카고 공항에서도 상당수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만큼 생길 만큼 강한 한파와 악천후가 동시에 밀어닥쳤다.
테슬라를 모는 브랜든 웰본은 차가워진 배터리로 충전소에 전기차 운전자들이 대거 몰려든 데다, 충전 시간마저 길어져 애를 먹어야 했다. 그는 17일 미국 시비에스(CBS) 뉴스에 “충전소에 온 지 5시간 넘었는데 아직 차를 충전하지 못했다”며 “(충전 시간만) 평소 45분이면 완료되는 데 2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이른바 ‘테슬라 얼음 시체’(tesla icy corpse)로 불리는 현상이다. 이밖에 테슬라의 자동 돌출형 전기 도어 손잡이가 얼어붙은 채 작동하지 않아 추위 속에서 여러 시간을 떤 운전자들이 “올겨울을 견뎌보고 테슬라를 계속 소유할지 다시 결정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전기차가 영하의 기온에서 배터리 기능이 크게 떨어지는 약점이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같은 사실은 국내 환경부가 공개한 전기차의 상온(25도) 대비 저온(영하 6.7도)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를 봐도, 저온일 때 주행거리가 최대 100㎞ 이상 줄어드는 것에서 손쉽게 알 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한국지엠, 폴크스바겐의 모델들이 상온 대비 저온에서 배터리 성능이 30%가량 떨어지고, 렉서스, 아우디, 볼보, 베엠베(BMW) 등도 20% 넘게 저하하는 등 해외 유수의 자동차 업체들의 상황이 대부분 비슷하다. 그나마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국내 차들은 각각 16.9%, 14.7% 저하로 배터리 성능이 나은 편이지만 역시 감소 폭이 두 자릿수에 이른다.
특히, 이번에 미국 전역에 극한 한파 여파는 전기차의 단점을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체험하게 됐다. “테슬라 소유주들의 곤경이 극심한 추위로 미국 전역이 겪고 있는 고통의 상징이 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런 문제는 전기차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이 극심한 저온 상태에서 화학반응을 거의 하지 못하면서 빚어지는 일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어바인 잭 바우어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말을 따 “이는 배터리의 충전과 방전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며 “배터리 전기 자동차를 매우 추운 환경에서 작동시키는 것은 결국 어려운 일이며 현재로선 물리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추운 겨울에 더 자주, 더 가까이서 배터리를 채울 수 있도록 충전소를 많이 짓는 것이다. 북유럽 노르웨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르웨이는 차량 4대 가운데 1대가 전기차로, 전기차 사용률이 높은 국가 중 가장 추운 나라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차량 충전소를 크게 늘린 데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 거주자가 많은 특성을 이용해 전기차 소유자의 90%가량이 자체 전기차 충전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자동차 제조업체 및 무역업 협회 제임스 볼리 대변인은 “추운 날씨에 전기차가 잘 달릴 수 있는 능력보다는 충전소와 같은 필수 인프라를 제공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또 전기차 생산 기업들도 혹한의 날씨에도 대응이 가능하도록 배터리 기능을 향상시키고 있어 이런 상황은 점차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르웨이 전기차협회 라스 고드볼트 고문은 “전기차에 혹한 같은 새 도전과제에 대해 업계가 이 문제를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지만, 부분적으로나마 해결하기 위해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고 짚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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