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2부’, 관객의 영화가 아닌, 최동훈의 영화 [영화와 세상사이]
지난 1월10일 개봉한 ‘외계+인 2부’는 최동훈의 영화일까, 그렇지 않을까.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 등을 연출한 한국 상업영화의 아이콘 최동훈은 지난 ‘외계+인 1부’의 혹평을 의식하며 이번 후속작을 절치부심 끝에 내놓았다. 재밌게도 ‘외계+인 2부’는 최동훈의 시그니처 인장이 곳곳에 녹아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만의 스타일을 어쭙잖게 흉내낸 듯한 조잡한 질감도 맴돌고 있다는 점에서 아리송한 인상을 남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매력 있게 가꾸는 요소는 언제나 캐릭터와 장르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두 편의 ‘외계+인’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독특한 지위에 놓인다. 그 이유는 바로 영화에 깃든 동력원에서 비롯된다. ‘외계+인 2부’를 움직이는 건 바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외계+인’ 2부작은 탄탄한 각본과 다층적인 캐릭터 묘사에 열을 올렸던 지난날 최동훈의 영화와 다른 선상에 놓일 수밖에 없고, 특히 1부보다 2부가 더 그렇다.
고려 시대와 현대를 오가며 전개되는 영화 속에서 맹인 검객 능파(진선규)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썬더(김우빈)가 “우리는 2022년으로 가겠다”고 했던 말을 놓치지 않았다. 미래로 합류하지 못한 능파는 불길한 예감에 얼른 서신을 써내려 간다. 그리고 미래로 떠난 이들이 세상을 구할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과 결단을 보여준다.
그저 후손 중 누군가에게 자신이 몸처럼 아꼈던 비검, 신선들의 거울과 부적, 무륵의 부채가 고스란히 전달될 거라 믿었던 그 마음. 막연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더없는 확신으로 가득 찬 그 믿음이 결국 ‘외계+인 2부’를 움직였던 것. 사실 이 능파의 믿음은 서사의 전개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요소다. 1391년의 고려, 그리고 2022년의 한국. 과연 천년에 가까운 세월이라는 간극이 능파의 믿음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 크고 작은 사건을 정신없이 중첩해가면서도 난잡하지 않게 서사의 줄기를 유지하고, 캐릭터 간 관계에 드러나는 정보와 드러나지 않는 정보의 격차를 활용하면서 전개에 긴장감을 부여했던 최동훈의 쫄깃한 각본이 어쩌면 ‘외계+인’에선 서사의 매듭을 위해 너무나 손쉬운 편의주의를 택한 게 아닐까?
이때 우리에겐 최동훈이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지 상상해 볼 기회가 생긴다. 사실 현대에 들어서 SF 장르가 영화로 구현될 때, 창작자들은 딜레마에 직면한다. 인류의 터전이나 정체성과 직결된 근미래의 위기를 그려내자니, 60년대 이후 제작된 수많은 영화들이 닳도록 반복해온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최근 들어선 인류의 결핍과 욕망 등이 실현되는 평행 우주를 통해 SF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콘텐츠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최동훈의 SF 영화는 무엇일까?
‘외계+인’ 시리즈는 로봇 아닌 로봇, 신선 아닌 신선, 인간 아닌 인간, 과거 아닌 과거, 현재 아닌 현재 등 '~아닌 ~' 혹은 '~답지 않은~'이라는 구조로 귀결되는 요소들의 배열을 고집한다. 기계와 인간형을 오가며 모습을 바꾸던 로봇 썬더(김우빈), 인간의 신체에 자유자재로 스며드는 사이보그 가드(김우빈), 역시 인간을 숙주로 삼는 외계인들까지. 이뿐만이 아니다. 로봇이 로봇답지 않은 대사를 내뱉고, 현실에 현실 같지 않은 그래픽 요소가 개입되고 있다. 고려 말에 롤렉스 시계와 권총이 너스레를 떨듯 등장하고, MCU의 '앤트맨'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크기 변환 액션 신이 신선 흑설(염정아)의 청동 거울을 통해 구현되는 등, 상식 선에서 납득 불가능한 인공적인 조작이 계속되면서 관객들을 얼마간 당황시키거나 낯설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듯 두 편의 ‘외계+인’에는 관객들이 각자 품던 기대감과 실망감이 교차할 때 피어나는 묘한 리듬이 지배한다. 현실을 풍자하거나 사회상을 도려내거나 완벽한 판타지 대서사를 펼쳐낼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저 이질적인 요소들이 충돌할 때 피어나는 리듬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쾌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다시 ‘외계+인 1부’를 떠올려 보자. 시공간 표지를 특정하는 순간, 영화는 현실과 호응하는 조건을 부여받는다. 그러니까 영화 속 1380년과 2022년 9월은 현실의 그것과 얼마나 같거나 다른지, 혹은 현실의 그것과 얼마나 가깝거나 먼 지 가늠할 기회가 생긴다. 문제는 어느 쪽으로 보든 <외계+인 1부>의 시간은 현실과 원활하게 소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 그 이유는 외계+인 시리즈에서 각각의 시대는 그저 배경으로만 작동할 뿐, 인물들이 왜 그 시점에서 그런 사건에 연루되는지 관객들을 납득하는 데엔 실패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외계+인’ 시리즈가 오가는 시공간대의 조합이 굳이 고려 벽란도와 현대의 서울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선택이 잘못됐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깊이 있는 작품성을 구현하려는 창작자의 야망보다는 오랜 기간 흥미를 품어온 자신의 취향을 곳곳에 심어놓고 만족하는 한 덕후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가령 2부의 칼집 액션 신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영화의 전개 상 없어도 되는 구간이지만, 감독이 그런 형태의 액션을 구현하는 데 매력을 느꼈기에 삽입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외계+인’은 관객들이 정의하는 최동훈이 아니라, 최동훈이 정의하는 최동훈을 드러내려는 영화에 가깝다. ‘외계+인’에 이은 그만의 세계관이 어떻게 요동치고 팽창할지 기대가 된다.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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